노 선배의 정치 이야기
노 선배의 정치 이야기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9.06.0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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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칼럼 대기자ㆍ칼럼니스트
박재근 칼럼 대기자ㆍ칼럼니스트

언론ㆍ정치 바로서야 국민 즐거워
제1 야당 인정 않으면 정치평화 없어
교섭단체에 무게 둔 과거 정치 배워야


 노(老)선배와의 만남이 정치와 언론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또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새삼 깨우치게 한 사건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실타래마냥 꼬인 현 정국상황에 대해 “이 X의 XX들,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몰라, 정치는 선악을 구분하는 게 아니야,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아니야”, “협상과 타협의 정치는 생물이어서 살아 펄떡거려야 하는데, 정치 실종이야, 아니 죽었어,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기는커녕, 진영논리만 담아내려는 프레임 전쟁과도 다를 바 없어”라는 등….

 또 실시간 중계하듯 들쑥날쑥인 여론조사에도 기다렸다는 듯 여과 없이 보도하는 언론환경에도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합리적 비판에 우선하는 언론의 당당함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것. 행간의 의미를 전하려고 서슬 퍼런 독재 권력의 검열에도 맞장 뜬 언론인이었기에 ‘알아서 기는 듯’, ‘말꼬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듯’, ‘받아쓰기 표본을 자처한 듯’ 이건 아니야”를 몇 번씩이나 되새기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정국도 그러하지만 언론도 여야 간 협상과 타협의 촉매제가 돼야 하는데 들쑤시는 듯, 진영논리를 읽을 수 있다면서 냉각기 정국해법 사례 2건을 끄집어냈다. 박정희 정권 때, 비판에 앞선 D일보 보도로 영수회담을 성사시킨 경우다. 야당 당사에서의 일어난 일화. D일보 기자, “김 총재(YS)님, 여야 영수회담 한번 해야겠죠, 그래야겠지” 그게 전부였지만 그 다음날 D일보 1면은 김 총재 여야영수회담 제의로 도배됐고 며칠 후 영수회담이 성사된 것을 예로 들었다.

 당사로 출근하는 김 총재에게 내뱉듯 한 게 1면 TOP이었다. 냉각기 정국해빙의 결과에 앞서 언론이 정치에 미치는 역할을 강조하며 기레기란 소릴 들어서야 되겠냐며 흥분했다. 당시 초짜(신입) 기자인 노(老) 선배는 이 같은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도 물 먹은 낙종의 쓰라림에도 언론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를 들춰냈다. 또 다른 예는 교섭단체 구성 건이다. ‘국민의 정부’ 성립에 DJP연합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후 교섭단체 구성에 2명이 모자라는 것을 돕기 위해 자민련에 국회의원을 빌려준 사례다. 이를 계기로 ‘DJP 공조 회복’은 그렇다 하더라도 자민련이 교섭단체로 등록되면서 2개의 여당, 대통제하에서 ‘공동정권’에 2개의 교섭단체가 탄생한 것.

 현 정국의 여야 영수회담 논쟁에 대해 한국당이 ‘1+1의 영수회담 제의에 청와대는 5+1’회담을, 반면 한국당의 ‘3+1’ 협상 역 제의는 제 1야당 입장에서 볼 때 지난 4ㆍ3 창원보선 때 민주당과 정의당 간 범여권단일화와 무관하지 않고 원내 비 교섭단체란 주장에도 무게가 실렸다. 당시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김대중 총재가 자당 국회의원 2명을 자민련 당적을 갖도록 한 경우다. 여야회담 때의 동석회동과 정국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려는 해법이었다. 이는 야당에 대해 필요 이상의 경계심ㆍ저항감을 자극하는 한편, 정권 내에서는 정치적 흥정ㆍ거래의 상시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DJP 공조는 야당을 압도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정치평화’를 논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책은 대화와 타협, 중책은 제도를 통한 문제해결, 하책은 권력의 과시와 행사란 것을 일깨운 사례는 정치사의 정석처럼 들렸다. 지금 야당이 자중지란 등 혼란에 빠진 인상을 주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권력의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헌정사의 경험이다. 압력이 강할수록 반발력도 커진다는 물리법칙이 정치과정에서도 당연사란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경제상황을 두고 국민들은 ‘IMF 위기 재현’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때다. 이런 판에 여야정치권이 주도권전쟁이라니,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 정치인가”라며 극도의 배신감으로 그렇게 묻고 있다고도 말했다. 정치권력이란 시계추와 같은 것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면서 여야가 공존해야만 국민을 위한 ‘정치평화의 첫 걸음’이란 사실도 강조했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노(老) 선배는 국회와 청와대만 출입한 선배기자다. 5ㆍ16군사정변, 전두환의 불법 정변과 민주주의 탄압, 5ㆍ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 항쟁 때는 현장에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거친 정치사의 산증인이다. 시계를 몇십년 전으로 돌려 그 때 그 시절, 노 선배의 낙종 등 현장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정치인과 현장기자에게는 교본이고 지침서나 다를 바 없었다. 정치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할 때 “국민이 즐겁다”는 등 새겨들어야 하고 행해야 할 대목이 차고 넘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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