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00 (금)
살아가는 행복 흔들리는 부모들 ⑥
살아가는 행복 흔들리는 부모들 ⑥
  • 김성곤
  • 승인 2019.06.06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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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교육심리학 박사ㆍ독서치료전문가
김성곤 교육심리학 박사ㆍ독서치료전문가

-자녀와 조부모의 관계를 돌아보자!

 핵가족시대를 맞이하여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이 흔치않은 현실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주 사랑은 여전하다. 손주들과 화상통화를 하기도 하고 동영상 몇 개는 저장하여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휴대폰을 꺼내 손자, 손녀자랑을 한다. 그래서 유행하는 말이 손주 자랑 하려면 5만 원 내고 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나의 친할머니는 강인한 분이셨다. 할아버지께서 징용에 징집되어 중국 땅 남영에서 돌아가시고 36살 젊은 나이에 혼자서 4남매를 키우셨다. 동네 여인들과 목화솜을 타고 있을 때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는데 할머니는 크게 통곡도 못하고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고 한다. 부지런하셨던 할머니는 손주들을 위해 밀가루를 부풀려 간식으로 요즘 길거리에 파는 옥수수빵 같은 빵도 쪄주시고 사시사철 밭에서 나는 것으로 장아찌 등을 만들어 도시락 반찬도 만들어 주시고 겨울이면 방안 머리맡에 고구마를 쪄서 두어 손주들이 먹게 하셨다. 아직도 이른 아침이면 사그락사그락 옷을 입으시고 집안일을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밤이면 사자, 호랑이, 뱀, 날아다니는 갈치 등이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셨는데 구전으로 들려주는 동화는 듣고 또 들어도 신기하였다.

 나의 외할머니는 마음이 후덕하신 분이셨다. 시골에서 천석지기 농사를 지으셨는데 언제나 어려운 사람들을 잊지 않고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돌 무렵 동생이 태어나서 나는 할머니의 빈 젖을 빨며 자랐다고 한다. 동생에게 어머니의 가슴을 빼앗긴 나는 할머니의 가슴과 등을 의지하며 자랐다. 할머니가 읍내에 있는 5일장을 다녀오실 때면 사탕과 내 속옷 등을 사오셨다. 농사가 바쁘지 않은 날에는 가까운 산으로 더덕을 캐러 가셨는데 할머니는 집으로 가시기전 우리 집에 들러 더덕을 주고 가시곤 하셨다. 아직도 외할머니와의 추억은 더덕 향기처럼 향기롭다. 할머니들의 덕분으로 나는 아직도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과 잘 지내고 있다. 요양원에 봉사활동을 가서도 할머니들과 밥도 잘 먹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에게서 친근함을 느낀다.

 우리아이들도 할머니와 친근하게 지낸다. 할머니와 함께 자고 할머니 생신 날 화분과 스카프를 선물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할머니 댁으로 과일을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뒤돌아보면 IMF로 힘들 때 남편의 직장에서 월급이 제때 지급되지 않았다. 3개월 미루어 1개월 씩 받기도 하였는데 나는 아이들 학원비와 어머니께 드리는 용돈 가운데 하나를 줄여야 했다. 나는 아이들의 학원을 끊고 시어머니께 용돈은 그대로 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아이들은 아주 잘 자라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나는 시어머니와 32년을 지냈지만 한 번도 마음상하거나 싸운 적이 없다. 그것은 오로지 시어머니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다. 제 딴에 잘한다 해도 시어머니께서 왜곡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신다면 나는 왜곡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댁과 사이좋게 지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시어머니의 사랑 덕분이고 둘째는 남편 덕분이다. 허물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시어머니께 나에 대한 좋은 말만 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믿고 따랐던 나의 자세도 칭찬하고 싶다. 세 박자가 잘 어울려 시댁과의 사이가 화목한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조부모와의 관계를 다룬 동화를 살펴보면 네버랜드 출판사, 베라 윌리엄스그림ㆍ글. ‘엄마의 의자’, 도서출판 마당, 한국 전래동화, ‘노인을 버리는 지게’, 시공주니어, 론 브룩스그림. 마거릿 와일드 글. ‘할머니가 남긴 선물’, 비룡소, 존버닝 햄 글ㆍ그림 ‘우리 할아버지’, 비룡소, 토미 드 파올라 글ㆍ그림, ‘오른발, 왼발’ 등이 있다. 나도 칼럼을 쓰기 위해 위의 동화를 다시 읽었는데 감동이 있었다.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읽어도 단순한 즐거움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할머니가 남긴 선물’과 ‘우리 할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 조부모와 손주의 추억을 그리고 있고, ‘엄마의 의자’는 꽃무늬 의자를 사려고 동전을 한푼 두푼 모으며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자를 준비하는 모습 속에서 행복은 작은 것에서 발견되는구나 하는 진리를 또다시 느끼게 되며, 할머니, 엄마, 손녀 3대가 의자에 앉아있는 삽화를 보며 나도 행복해 졌다. ‘오른발, 왼발’은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걸음마를 익혔던 아이가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다시 회복할 때 할아버지에게 오른발, 왼발 걸음마를 연습시키는 장면들이 감동적이다. 뇌졸중을 앓고 난 후에도 죽음에 이르지 않고 손자와 함께 회복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 ‘노인을 버리는 지게’는 우리 아이들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 때 읽어 주던 전래동화이다. 동화 ‘노인을 버리는 지게’의 내용을 살펴보면 할아버지를 버린 지게를 손자가 다시 가져오면서 “아버지를 버릴 때 제가 또 써야 한다”고 부모에게 말한다. 이 대목에서는 나도 마음이 ‘쿵!’ 했다.

 누구나 자녀들에게 존경받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 부모에게 잘 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라 그러면 반두라의 모델링 효과에 의해 나도 나의 자녀들에게 존경 받을 것이다.

 부모가 된 나는, 나의 부모에게 어떤 자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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