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의 삶, 인종 차별로 감당하기 힘들었죠”
“초기 한국의 삶, 인종 차별로 감당하기 힘들었죠”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6.03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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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이주 외국인의 삶 <결혼해서 필리핀서 김해 온 레니>
필리핀서 온 마리아 렐라니 셀레리오 킴(MaㆍLelanie Selerio-Kim)은 이제 한국이 자신의 고향같다며 환하게 웃는다.
필리핀서 온 마리아 렐라니 셀레리오 킴(MaㆍLelanie Selerio-Kim)은 이제 한국이 자신의 고향같다며 환하게 웃는다.

구직 활동 지쳐 자존감 낮아지기도 버스 기사 “내려라” 듣고 서러워

미용실 바가지 요금에 불이익 당해 불안했던 시간 극복, 자신감 되찾아




 도내 거주하는 이주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구성원의 생활은 바로 우리 삶의 일부다. 이웃 간 소통이 안 돼 마음의 벽이 높아지는 요즘에 이주 외국인의 삶까지 들여다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주 외국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은 우리 사회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이들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고 들으면 ‘우리는 하나’라는 팻말을 더 빨리 볼 수 있지 않을까.



 여름햇살이 따스하게 내리 쬐는 지난 29일 오후, 김해에 거주하고 있는 마리아 렐라니 셀레리오 킴(이하 레니)을 만났다.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사는 레니는 그녀의 9년간의 한국에서의 삶을 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비록 지나간 시간 속에 자존감이 낮은 나였지만 현재는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쳐요”라고.

 까무잡잡한 피부, 진한 쌍꺼풀의 큰 눈, 살짝 어눌한 한국어. 필리핀에서 온 레니는 한국 남자와 결혼해 슬하에 초등학생 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김해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며 지난 5월에는 자신의 영어 공부방을 오픈했다. 얼핏 들으면 탄탄대로 잘 풀려온 것 같은 삶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니 한국에서의 그녀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 레니에게 어떻게 한국인 남편을 만나게 됐는지 물어봤다.

 “2005년 겨울, 남편의 조카들이 필리핀 세부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홈스테이를 했어요. 전 그때 당시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영어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었죠. 그때 가르쳤던 아이들이 남편의 조카들이었어요. 남편이 조카들을 만나러 필리핀에 놀러오면서 우리의 첫 만남도 시작됐어요. 남편이 첫눈에 반했다더군요. 웃음. 그리고는 제 보스를 통해 우리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더라고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죠. 그 후 한국으로 돌아간 남편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이어나갔고 남편은 저를 보기위해 세부와 한국을 오가며 애정공세를 퍼부었죠. 그렇게 25살에 남편과 결혼했어요.” 스물다섯, 어린 나이 외국인과 결혼한 레니는 결혼 후 그녀의 삶의 스토리를 들려줬다.

 “결혼 후, 남편의 친척이 마닐라에서 홈스테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함께 살게 됐어요.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고 서류 작업만 마친 상태였죠. 마닐라에서 4년간 사는 동안 남편은 골프 강사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어요. 언어장벽으로 남편은 한국인만 코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요가 많지 않아 생계유지가 어려웠어요. 결국 2010년에 한국으로 오기로 했죠. 15개월 된 딸과 4살 된 아들과 함께요. 가진 거라곤 옷가지가 다였어요. 평창의 한 교회에서 살 공간을 마련해준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죠.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조건으로 숙식을 해결했어요. 수업 시간에 갓난아이 젖을 물리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몇 번의 교회를 거쳐 장유에 소재하는 한 교회에서 교회 근처에 살 곳을 마련해 준 덕분에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한국에서 거주하며 가장 어려운 점을 물었더니 ‘인종차별’이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속 사정을 들어봤다. 한 번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버스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다는 레니는 서럽고 억울했던 경험을 얘기하며 그간의 고충을 털어놨다. 또 한 번은 미용실에서 딸아이 머리를 자른 후,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살펴보니 바가지요금이 책정돼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국은 외국인 주민의 인권 보호와 국적 인종 등에 따른 차별 방지 등 다양성이 존중되는 성숙한 다문화 사회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보냈던 불안하고 답답했던 시간들이 자신을 더 굳건하고 강하게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레니.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의 홀로서기를 못할 것이라는 말에 속상하기도 했다는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구직 활동을 위한 수차례의 면접과 반복되는 실패를 거듭하며 안으로 밖으로 단단해진 레니는 현재 자신의 공부방을 운영하는 원장이 됐다.

 레니는 인터뷰 내내 지역 신문에 자신의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어 레니는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바람을 털어놨다. “한국에는 이미 많은 이주민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고 다문화 가정과 혼혈 세대가 점점 늘고 있잖아요.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인종적ㆍ문화적 편견은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피부색이 다른 것은 차이일 뿐, 우열을 판단하는 근거는 아니잖아요”라며.

 두 아이의 엄마로서, 영어 공부방 원장님으로서, 또 아내로서, 평범한 주민으로서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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