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에 신화를 씌우려는 사람들
봉하마을에 신화를 씌우려는 사람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5.30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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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만리 류한열 편집국장
서향만리 류한열 편집국장

순수한 추모의 정신에

‘의도’를 하나 더 붙일 수


있다면 봉하를 찾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노무현 정신은 없고

신화만 남는다면 봉하는

시민들의 마음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23일 오후 2시 김해 봉하마을. 힘깨나 쓰는 여야 정치인과 시민들이 모여 ‘새로운 노무현’을 추모하는 10주기 추도식 현장에서 노 전 대통령 다시 살아났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에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노 대통령은 인권에 헌신한 대통령”이라는 추도사를 하면서 1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전국에서 이른 아침부터 온 1만여 명의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봉하마을을 노랗게 물들였다. 노 전 대통령이 누워있는 김해 봉하마을은 사자(死者)의 정신을 기리는 성스러운 자리라고 해도 어깃장을 놓을 사람은 없다.

 정신을 기리는 행위가 정신을 파는 행위로 변하면 타락이 된다. 정신을 팔아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는 눈뜨고 보기 민망하다. 정치인이 봉하마을을 찾아 추모하는 행위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인이었기에 당연한 흐름이다. 한 정치인을 일반인으로 보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봉하마을을 둘러 싼 환경이 묘해 순수한 추모의 발걸음이 자칫 정치력을 과시하는 거드름으로 비칠 때가 있다. 봉하마을 너럭바위가 집단지성을 모으는 단단한 반석이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그런 개연성이 높다고 하면 토를 달기도 어렵다.

 개인이나 집단은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장치를 쓴다. 우리는 상황과 주변의 관계를 호전시키기 위해 인격이나 지성을 포장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할 때 이 가면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인격인 ‘페르소나’로 표현할 수 있다. 페르소나는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쓴 개념이다. 현대인은 페르소나와 실제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현생 페르소나를 쓰고 살다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삶을 종 치는 사람은 불행하다. 정치인들이 페르소나를 쓰고 연기를 잘해야 표를 모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의 꿈을 되새기는 행위를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면 페르소나를 두텁게 하려는 타락한 지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봉하마을은 김해 지역이 자랑할 수 있는 정신적 성지다. 큰 인물을 기리는 날이 있어 봉하는 정신적 해방구 역할을 한다. 한 인물의 뜻을 기리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모을 수 힘은 강제한다고 되지 않는다. 봉하를 중심축에 두고 연결되는 지성의 줄은 아름다운 정신적 소산이다. 거대한 정신을 공유하는 집단이 인류의 진화에서 승리했다. 진화에서 승리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해도 역사는 주류를 형성한 그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소산인가. 봉하마을에서 퍼지는 강력한 정신 유대가 전국을 뒤덮을 수 있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봉하를 찾아 노무현 정신을 무장할 것이다. 순수한 추모의 정신에 ‘의도’를 하나 더 붙일 수 있다면 봉하를 찾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다시 봉하마을로 돌아가서. 봉하마을에 신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봉하에는 한 대통령의 정신이 깃들여 있고 동시에 마지막 삶의 아픔이 서려있다. 노 전 대통령의 꾸밈없는 웃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신화는 자연스레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의도된 계산에서 꾸며지기도 한다. 신화를 만드는 주체는 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줍는 요행을 바란다. 작은 행운에 기댄 행위가 모여 실제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시간이 흘러 신화의 옷을 입는다. 나중에 노무현 정신은 없고 신화만 남는다면 봉하는 시민들의 마음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이 노무현 정신을 파는 행위를 보면 가슴을 치고 싶어요.” 노무현을 정말 사랑한다는 한 시민의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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