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6:28 (토)
“사발은 기술 아닌 손끝에 전달된 마음으로 빚지요”
“사발은 기술 아닌 손끝에 전달된 마음으로 빚지요”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5.2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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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이 좋다 사람이 좋다 사기장 소남 임만재 (김해 한림 정호가마 운영)
사발을 빚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임만재 사기장은 “사발은 기술로 빚는 게 아니고 흙과 호흡하면서 마음으로 빚는다”고 말한다.
사발을 빚기 위해 물레를 돌리는 임만재 사기장은 “사발은 기술로 빚는 게 아니고 흙과 호흡하면서 마음으로 빚는다”고 말한다.

40년간 물레 돌리며 사발 만들어 도쿄 ‘이도 전시회’ 보고 1년간 휴업

범접 못 할 세계에 ‘임만재 이도’ 결심 전통가마 고집… 한 해 100 작품 내놓아

 “사발은 기술로 빚는 게 아니고 기술을 넘어 마음으로 빚는 겁니다. 사발의 세계는 손장난으로 결코 근접할 수 없어요. 사발은 마음에서 뭉쳐진 ‘기’가 손끝에서 표현돼 예술의 옷을 입고 가마에서 걸어 나와 세상과 마주하는 특별한 물건이지요.” 임 사기장은 김해 한림에 있는 정호가마에서 40년 동안 흙과 하나 돼 물레를 돌렸지만 여전히 “지금까지 겉돌았다”고 말한다. 대상만을 좇았다는 하소연에는 겸손이 묻어나지만 대상을 넘어 ‘나만의 것’에 착념한다는 그의 말에서 예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임 사기장은 몇 년 전 일본 도쿄 이도 전시회에 다녀와 1년 동안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최고 이도 40여 점을 모아 연 전시회에서 마음이 아득해지는 감동을 받았다. 전시회 주위에 잠자리를 구해 3일 동안 전시회장의 문이 열려 있는 시간에 작품을 보고 또 봤다.

임만재 사기장 작품인 대정호. 김명일 기자
임만재 사기장 작품인 대정호. 김명일 기자

그의 입에서는 “저 벽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오랜 세월 이도 재현에만 몰두했는데 여전히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그의 생각은 자책에 가까웠다. 작품의 세계는 우리 조상이 만든 ‘우리 것’을 입고 있는데 후손이 그 세계를 범하지 못할까? “우리 조상이 만든 이도에서 에너지를 빨아 당기는 걸 느꼈어요. 이도의 세계는 파고 파도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임 사기장은 갈 길이 아직 있다는데 위안을 얻었다. 40년 이도를 빚으면서 일본에서 본 이도의 흉내도 내기 힘들다는 고백에서 ‘임만재 이도’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1년이 걸렸고 다시 물레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임만재 사기장의 정호가마터 전경. 정호가마에서 임만재 사기장은 ‘나의 이도’를 만드는데 전력하고 있다.
임만재 사기장의 정호가마터 전경. 정호가마에서 임만재 사기장은 ‘나의 이도’를 만드는데 전력하고 있다.

 옛 이도 명품이 주는 감동을 왜 현재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걸까? 그는 “옛 도공은 철저한 ‘쟁이 정신’으로 사발을 빚었어요. 매일 끼니를 연명해야 하는 절박함이 손끝에서 나왔을 게 분명합니다. 물레를 돌리는 행위 자체가 삶이었는데 요즘 도예가가 얼마를 따라 갈 수 있겠어요”라며 “하심(下心)해야 나오는 사발을 두고 마음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사발을 빚으면 깊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이도는 덜 익은 그릇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임 사기장은 “덜 익은 그릇이 아니고 엄청 잘 익은 그릇이다”고 소리를 높이면서 “이도가 연질이라고 하지만 절대 연질이 아니다”라 덧붙인다. “이도는 원래부터 약하게 구워진 그릇이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찻사발 가운데 최고인 이도 앞에 서면 수백 년 세월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임 사기장이 내놓는 사발의 깊이는 우물처럼 아득하고 외면에 그려진 손자국은 투박하기 그지없다. 표면에 독립적으로 하나씩 난 둥근 모양 크랙은 사발을 온화한 풍취를 내뿜게 한다. 둥근 굽에 붙은 매화피는 사발의 안정감을 주면서 힘껏 사발을 붙들고 있다.

 임 사기장은 14살 때 김해요업에서 물레 돌리는 기술자를 창문 너머로 보면서 흙과 인연을 맺었다. 남몰래 그릇 만드는 연습을 하고 흙과 궁합을 맞추고 그후 10여년 동안 전국을 돌며 물레 대장을 맡아 흙 작업을 했다. 그후 한 가마 주인이 건넨 이도사발을 흉내 내다 이도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임 사기장은 이도를 빚으면서 이도는 아무렇게나 막쓰기 위해 만든 그릇이 아니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 이도 제작이 종교 행위처럼 임 사기장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특별한 인연을 넘어 평생을 함께할 천둥 같은 운명이었다.

임만재 사기장 작품인 소정호.
임만재 사기장 작품인 소정호.

 임 사기장은 “이도 작업은 옛 선조들의 마음을 담는 행위예요. 옛 이도가 김해 인근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오랜 작업에서 마음에 새겨진 확신이지요. 김해 흙을 구해 이도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 건 같은 흙을 가지고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마음에 내린 동질감이 아닐까요.”

 임 사기장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요즘 ‘정체성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낸다. 자기 색깔이 없는 도예가는 작품의 깊이를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절박함이 없기 때문에 겉멋만 든 작품만 내놓는다고 진단한다. 임 사기장은 “사발은 만난 건 나에게 큰 복이지요. 아직 나의 온전한 분신을 만들지 못했지만 정복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나그네처럼 매일 아침 소망을 품고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임 사기장은 마지막 도제식 훈련을 거친 사기장이다. 친구가 붙인 별명에 임 사기장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14살 때부터 물레를 돌리면서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고 제대로 훈련을 받았다. ‘마지막 조선도공’이라는 말을 듣는다. 최근 그는 제자 3명을 3년, 6년, 7년씩 훈련을 시켜 자립시켰다. 흙을 만지는 올곧은 정신을 갖춘 사람이 다음 세대를 맡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임 사기장이 전통가마를 고수하는 이유도 정신과 맥이 닿아있다. “가스가마를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불을 선택하는 이유는 정신이고 삶이기 때문이에요. 전통가마와 가스가마 두 쪽을 다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해요. 정신이 혼란스러운데 좋은 작품이 나오기 만무하기 때문이지요.” 그는 한 해 자신과 닮은 100여 점을 세상에 내놓는다. 일 년에 두 번 가마에 불을 넣고 작품을 골라낸다. 수많은 작품에서 욕심 없이 욕심을 갖고 만든 작품 일부가 임 사기장의 마니아에게 넘어간다.

 임 사기장은 전국 찻사발 공모전에서 6연패를 일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완성도에 다른 의견을 붙일 수 없지만 임 사기장 자신만이 “더 채울 게 있다”는 푸념을 한다. 임 사기장은 16세기 중반 조선 도공이 만든 이도차완이 일본 차인(茶人)의 눈에 들어 일본 최고 보물이 된 역사에 또 다른 역사를 입혀 오늘 이도의 역사를 새기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도를 빚기는 어렵지만 이도를 빚을 때 느끼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또 정진의 꿈을 꾼다”는 임 사기장의 말에서 진정한 예술의 길이 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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