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후 모두 부화 성공해 보살핌 속 맹금류로 성장
“여보 이것 봐.”
지난달 2일, 거제에 거주하는 박세준 씨(55ㆍ회사원)가 자신의 집 베란다 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실외기 뒤 공간에 놓은 화분에 새알 6개가 놓여있던 것이다. 이후로 살펴보니 작은 매처럼 생긴 새 한 쌍이 드나드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부터 박씨는 인터넷을 검색해 이 새가 천연기념물 323-8호 황조롱이인 것으로 확신했다.
맹금류인 이 황조롱이가 1천 세대 주민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13층 베란다 에어콘 실외기 옆에 둥지를 튼 것이다.
해당 아파트에는 창문마다 엇비슷한 실외기가 달려있다. 박씨는 “베란다에 더덕을 심었던 화분을 그대로 치우지 않고 두었는데 이것이 지나가던 황조롱이의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알을 품은 지 만 한 달 후인 지난 2일과 3일 알 6개에서 새끼가 모두 부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씨 부부는 맹금류인 황조롱이가 옆에 산다는 것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새끼를 두고 어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는 ‘혹시 밑으로 떨어질까’, ‘먹이는 제대로 먹일 수 있을까’ 온통 신경이 황조롱이 가족에게로 쏠리며 긴장의 연속인 생활이 이어졌다.
다행히 새끼는 납작한 화분 안에 둥지를 튼 터라 오히려 새 둥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박씨 부부가 삼겹살을 잘게 썰어 먹여주면 잘도 받아 먹었다. 박씨는 “두 부부만 사는 아파트 안에서 느끼게 된 쏠쏠한 즐거움에 정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벌거숭이 새끼가 회색솜털로 싸인 털복숭이가 되고, 이제는 얼굴에 제법 흑갈색 특유의 털이 나서 새끼 황조롱이로 손색이 없다.
6마리 새끼를 먹여야 하는 황조롱이 부부의 움직임도 많이 빨라졌다. 주로 먹이는 참새다. 매일 몇 마리의 참새를 물어다 주면 새끼들이 달려들어 산 채로 뜯어 먹는다. 이 맛을 들인 후는 삼겹살이나 인위적인 먹이는 일체 끊은 상태다.
박씨는 “인터넷 자료에는 부화 후 한 달 이내 둥지를 떠나는 것으로 돼 있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며 “특별한 인연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천적과 농약의 피해 등 환경의 변화로 아파트 베란다로 찾아 든 황조롱이 한 쌍, 맘씨 좋은 부부의 보살핌이 보태져 6마리 새끼가 무럭 자라고 있다. 어엿한 맹금류의 자태를 보여주는 이들도 이제는 이소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람, 자연 모두가 조화를 이뤄가는 장면이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