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바이러스로 가득한 세상 꿈꾸며
행복 바이러스로 가득한 세상 꿈꾸며
  • 이광수
  • 승인 2019.05.27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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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주말 아침에 초등 동기생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평소 종종 글이나 사진영상을 주고받는 사이라 얼른 열어봤다. 이번에 보내온 사연은 행복 바이러스에 관한 감동적인 사연이었다. 어떤 할머니가 손자랑 장보기용 작은 캐리어를 끌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가 길가에 세워둔 외제 승용차의 옆면을 긁어 흠집을 내고 말았다. 짐이라고 해야 손자 간식용 바나나 한 꼭지와 찬거리 콩나물 한 봉지가 전부였다. 짐이 가벼워 손자가 끌다가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깜짝 놀란 할머니는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었겠지만 남의 차에 흠집을 낸 것이 겁이 나 어쩔 줄 모르고 울상을 짓자 손자가 울음보를 터뜨렸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할머니의 사정을 알게 됐는데 그냥 둘 수가 없어 차량 정면 유리창 모서리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차주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온 차주와 그 부인은 오히려 차를 주차장에 대지 않고 도로변에 주차한 것은 자기 잘못이라며 할머니께 염려 말라 하고 우는 손자를 달래며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고의로 사고를 유발해 남을 등 처먹는 사기꾼들이 많은 세상에, 이런 선하고 바른 심성을 가진 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그렇게 인정 없고 삭막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괜히 억하심정으로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마치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것 같고, 자신은 빼 빠지게 일해도 중고소형차나 몰고 다니는 신세라며 세상을 원망하고 괜히 부자들을 증오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그런 사람은 정말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외제 차를 몰고 다닐 것이다. 곤경에 처한 할머니에게 한 태도를 보면 그분의 품성과 인격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노력해서 거둔 만큼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래서 다들 돈을 벌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한다. 외제 차의 경우 작은 흠집만 나도 수리비가 가당찮게 나온다. 물론 보험으로 처리하겠지만 납부할 보험료에 사고할증이 부가돼 보험료가 늘어나기 때문에 그걸 쉬 감수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이럴 경우 오히려 덤터기를 씌워 가족을 부르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국민 정서다. 한편, 차주의 선행(?)을 전해 들은 그 차 한국대리점에서는 수리비 전액을 회사에서 부담하겠다고 했다 한다. 이처럼 선행 행복 바이러스의 전파력은 악성 바이러스 못지않게 빠르고 광범위하다. 그래서 우리는 선행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며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이 어린이가 성장해 자신이 그때 겪었던 좋은 기억으로 인해 자신이 받은 행복 바이러스를 남에게도 전파할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아량을 베풀면서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지금 행복 바이러스 얘기를 하면서 나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있어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 정치판에 위와 같은 역지사지의 행복 바이러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역지사지는 고사성어로만 존재할 뿐 서로 못 잡아먹어 원수처럼 대하며 으르렁거린다. 도를 넘은 막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는 무조건 적이며 서로 적폐 대상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국민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들먹이면서 정작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권력 유지와 정권쟁탈뿐이다. 정부 수립 후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한시도 편할 때가 없었던 것이 한국의 정치 권력사이다. 자유당 장기집권, 군사혁명 장기집권, 군부 무력집권의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민주화가 된 지금까지도,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정치권의 권력 싸움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지난 현대사가 독재와 민주화의 투쟁으로 점철되기는 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경제자립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의 저력을 세계 각국은 경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판은 아직도 구태의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지난 일을 과거사 정리라는 미명하에 뒤집기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급선무는 과거사 정리나 적폐 청산보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견고히 지키면서, 더욱 성장 발전해 함께 잘 먹고 잘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물론 과거의 잘못은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그런 우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역사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한국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초강대국들의 군사ㆍ경제경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형국에 처해있다. 군사ㆍ경제적으로 의존적 관계에 있는 강대국 틈새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은 고도의 외교적 전략 구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정치권은 나라야 어찌 되던 말든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 통탄을 금치 못한다. 이제부터라도 앞서 얘기한 할머니의 캐리어 사건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역지사지의 행복 바이러스가 우리 정치권에도 전파돼 협치와 화합의 자유민주정치가 펼쳐지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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