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브랜드 ‘태권도’로 평화의 싹 틔우다
한국 최고 브랜드 ‘태권도’로 평화의 싹 틔우다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5.19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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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평화시대 맞아 ‘정우진 정신’ 재조명
정우진 사범은 한국 최고의 브랜드 ‘태권도’라는 매개체가 남북평화와 북미관계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우진 사범은 한국 최고의 브랜드 ‘태권도’라는 매개체가 남북평화와 북미관계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다.

북미 관계 벽 허문 문화교류 태권도 무도 정신 강조하는 ITF 태권도
세계적 시합 룰 가진 WTF 태권도 “태권도 통합이 남북통일의 기초”

미 대륙 태권도 개척 ‘그랜드 마스터’

72년 35달러로 아메리칸 드림 이뤄 47년간 19만명 수련인 지도 힘써

5천여명 이상 블랙벨트 유단자 배출 세계 유일 잡지 ‘태권도 타임즈’ 운영

무도란 기술 아닌 정신 나누는 일 북한 시범단, 보스턴에서 공연 계획

태권도로 한반도 관계 긍정적 영향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 전쟁 이후 70년간의 북한과 미국의 대립을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지금 ‘정우진 정신’이 필요하다.

 남한에서는 빨갱이, 북한에서는 남한의 첩자, 미국에서는 테러리스트로 오해를 받아온 정우진 씨는 ‘태권도’라는 매개체로 지난 50년간 평화를 위해 싸워왔다. 이 정신이 바로 ‘정우진 정신’이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차 북미 정상회담.

 하지만 두 정상은 끝내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정우진 사범이 우리의 고유 무술인 태권도 품새를 절도 있는 자세로 선보이고 있다.
정우진 사범이 우리의 고유 무술인 태권도 품새를 절도 있는 자세로 선보이고 있다.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정상회담은 2018년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된 후 8개월 만에 성사됐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담은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틀째 회담에서 ‘제재 완화’ 등을 둘러싼 양측의 합의 실패로 결렬되고 말았다.

 회담 이후에도 팽팽하게 맞섰던 북한과 미국.

 70년 넘게 쌓아온 불신의 벽은 높고도 견고했다.

 이러한 긴장을 허문 미국과 북한의 문화교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태권도다.

 미국의 ITF(국제태권도연맹)태권도 선수들이 미국을 공식 방문해 시범공연을 보였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단 한 번의 공식 교류가 없었던 북한과 미국은 태권도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됐다.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미국 공연을 성사시킨 주인공은 정우진 씨다.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 시더래피즈에 살고 있는 정우진 사범은 미국에 태권도를 뿌리내린 1세대 원로 사범이다.

정우진 사범이 블랙벨트 유단자 심사를 하고 있다.
정우진 사범이 블랙벨트 유단자 심사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ITF태권도를 수련한다.

 세계태권도계는 오랜 세월동안 철저하게 양분돼 왔다. 육군 소장 출신 고 최홍희 장군은 1950년대에 태권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도입하고 여러 품새를 정리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자 박정희 군사정권과 정치적 갈등을 빚어 그는 캐나다로 망명했다. 정치적인 이유에 따라 ITF가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 대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두게 되면서 그 대신 한국에는 WTF(세계태권도연맹)가 설립돼 오늘에 이르렀다.

 정 사범은 “태권도에는 여러 품새가 있지만 국제태권도연맹(ITF)에서 정하고 있는 창헌류형을 가장 권장한다. 우리 위인들의 역사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WTF에는 세계적인 시합 룰이 있는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룰이다. 시합의 룰에 있어서는 WTF의 룰을 썼으면 좋겠다”며 이어 “그러나 나는 두 연맹 중 어느 쪽에 소속돼 있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저 태권도를 사랑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고 말한다.

 무도로서 정신을 강조하는 ITF태권도는 모든 수련생들이 동작의 의미와 이름을 외우고 암송할 수 있어야 한다.

 정 사범이 한 수련생에게 도산의 품새를 읊도록 시킨다.

 그러자 그 수련생은 사범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답한다.
 

‘세계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35달러만 들고 미국 이민 떠난 정우진 사범의 도전정신이 담긴 그의 일대기가 담겨있다.
‘세계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35달러만 들고 미국 이민 떠난 정우진 사범의 도전정신이 담긴 그의 일대기가 담겨있다.

“예썰(Yes, Sir). 도산(품새)에는 24개의 동작이 있습니다. 애국자 안창호의 호이며 그는 일생을 한국의 교육 증진과 독립을 힘쓰는 데 바쳤습니다”라고. 한국어로 구령을 붙이고 한국 역사까지 알아야 하는 미국인들은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태권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정우진 사범은 “태권도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것은 맞으나 꽃은 미국에서 피웠다”며 “미국의 태권도는 보석이다. 자신의 일생의 보물이라고 여긴다”고 말한다.

 1972년 35달러만 들고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정우진 사범은 47년간 19만 명을 지도했고 5천여 명의 블랙벨트 유단자를 배출했다.

 정 사범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만 50여 개가 넘는다.

 미국의 태권도 수련인구는 약 1천800만 명이다. 미국에서 태권도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 사범은 “태권도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다. 나라는 분단돼 있지만 태권도는 하나가 돼야 한다. 일차적으로 태권도가 하나가 되면 나라도 하나가 되기 쉽지 않냐”며 “태권도의 종주국은 사우스(South)도 노스(North)도 아닌, 그냥 코리아”라고 말한다.

 정 사범이 북한의 미국 태권도 공연을 기획한 것은 90년대 초다.

 서류 준비부터 경비 마련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준비했으며 이로부터 16년 후 미국 아이오와주,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1차 공연이 열렸다.

 북한 사람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정우진 사범은 “북한 시범공연을 계획한 지 16년 만인 2007년에 처음으로 다섯 개 도시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그때는 굉장히 걱정이 많았고 여러 가지로 힘이 들었지만 아주 스릴 있었고 재미있고 신났다”고 회고한다.

 북한 사람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공연을 했을 당시에, 코카콜라와 같은 미국음식과 미국의 상징적인 것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 정도로 북한사람들은 미국을 경계했다.

 북한 시범단은 18일 동안 미국의 5개 도시를 방문해 공연을 펼쳤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환호와 격려는 북한 시범단의 긴장을 풀어줬다.

 정 사범은 “이날의 북한시범단의 절도 있는 품새 동작과 격파에는 태권도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이 묻어져 있었다. 어느덧 경계의 눈초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고 말한다.

 정우진 사범은 제자들을 배출하는 일 말고도 태권도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늘 고민한다.

 정 사범은 ‘태권도 타임즈’라는 태권도 잡지를 37년째 운영하며 태권도를 알리고 그 위상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세계 120개국에 배부되는 ‘태권도 타임즈’는 세계를 커버하는 유일한 태권도 잡지로 5주에 한 번씩 영어로 발간되며 발행 부수는 100만부를 훌쩍 넘어섰다.

 정 사범은 “미국에 와서 우여곡절 끝에 태권도장을 열었을 때,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 비로소 무도란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정신을 나누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내게 이러한 철학이 생긴 것은 바로 나의 제자들이 원하는 것을 한 결과였다. 따라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이전에 내가 바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셈이다”며 제자들이 곧 나의 스승이라 했다. 정 사범은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수많은 태권도인을 가슴에 새겼다. 정 사범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지금 나름대로의 성취와 보람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난 날 내가 겪은 고난의 시간은 결코 좌절의 시간도, 고통의 순간도 아니었다. 그 고난은 내 인생의 보약이었다”고 말한다.

 지난날들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그를 도와준 인연이라고 말하고 자신은 한낮 조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정우진 사범.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곳 멘하탄. 이곳에서 정 사범은 3차 공연을 계획 중이다.

 정 사범은 “3차 공연 때는 북한 태권도 선수단과 미국 수련생들이 함께하는 시범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한다.

 3차 공연을 앞두고 미 국무부를 설득해 북한 선수들의 입국허가를 1등 공신은 캐서린 칼레헨 변호사다.

 우호적인 국가출신이 아닐 경우 미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허가든지 받아야한다. 북한이 핵 실험을 벌이면서 비자 발급이 중단됐을 때도 캐서린 변호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이 3차 공연을 위한 적기라고 말한다. 위기 속에서도 북한 선수들의 입국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정 사범은 보스턴에 가서 수련생들에게 직접 공연을 홍보한다. 2차 북미정상 결렬 이후 미국 내에서 북한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커진 탓이다. 미국 태권도인들의 지지와 관심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북 시범단의 2차 공연은 2011년 미국 뉴욕에서 있었다. 2011년도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폭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돼, 미국 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된 시기였다.

 정 사범은 “2차 공연은 정말 필요했던 시기에 시의적절한 긍정적인 문화교류 행사였다. 갈등 국면이 심화된 시기에 태권도는 긴장 국면을 완화했다”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도 태권도 교류를 위해 묵묵히 한길을 걸어왔다.

 다시 한 번 3차 공연을 여는 것이 정사범의 간절한 바람이다.

 북미 관계는 물론 한반도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정 사범은 오늘도 태권도 교류를 위해 달리고 있다.

 70년을 대립해온 북한과 미국, 당장 깊은 신뢰를 쌓을 순 없지만 서로 만나고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다 보면 조금씩 믿음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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