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5:27 (금)
중년에 찾아온 ‘설렘’… 시와 행복한 ‘동행’
중년에 찾아온 ‘설렘’… 시와 행복한 ‘동행’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5.09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이 좋다 사람이 좋다 늦깎이 시인 최미연
늦은 나이에 시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최미연 씨는 등단 후 시를 쓰며 중년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 시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최미연 씨는 등단 후 시를 쓰며 중년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다.

월간문학세계ㆍ김해문인협회ㆍ장유문학회ㆍ가야문화예술진흥회 회원

환갑 바라보는 나이에 시인돼 ‘찔레꽃’, ‘봉정암’, ‘내가 그리운 날’
3편의 시로 등단 월간문학회 신인상 수상
글 쓰며 갱년기 극복 문학기행ㆍ고향 통해 영감 얻어
가장 쓰고 싶은 글은 아들 위한 글 “대중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시 쓸 것”

 김해시 주촌면, 한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최미연 씨는 내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에 시인이 됐다. 발달장애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 남 앞에 나서는 게 많이 두려웠다는 최미연 시인은 지난날의 자신을 소심하고 작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최미연 씨는 인생의 힘든 시기를 극복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글쓰기라고 한다. 시인 돼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5월의 붉은 찔레꽃마냥 활짝 폈다. 저마다의 순수한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너무 늦진 않았을까 고민하는 많은 이들을 대신해서 그녀에게 찾아온 중년의 설렘을 취재했다.

지난해 월간 문학세계에서 3편의 시로 등단한 최미연 시인은 신인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월간 문학세계에서 3편의 시로 등단한 최미연 시인은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를 처음 쓰게 된 계기

 10년 전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터넷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나무와 시인’이라는 한 카페에 가입했는데 지인이 시를 한 번 써보라고 권하더군요. 제가 쓴 시를 올렸더니 칭찬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그렇게 취미생활로 카페활동을 하며 습작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문학 모임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여러 문학회에 가입했어요. 꾸준히 시를 쓰다 보니 주변에서 등단을 해보지 않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렇게 지난 2018년 1월 월간 문학세계에서 등단해 신인상을 수상했어요.

 △3편의 시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등단

 ‘찔레꽃’, ‘봉정암’, ‘내가 그리운 날’ 3편의 시로 등단했어요. 어느 날 강가를 지나다가 찔레꽃 향기가 코를 찌를 만큼 강하게 나더라고요. 그 향기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고향 친구들 생각에 연필을 들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시가 ‘찔레꽃’이에요. ‘봉정암’은 직접 답사를 다녀와 느꼈던 경험이 담겨져 있죠. 또 ‘네가 그리운 날’은… 비 올 때 생각나는 사람이 다들 한 명씩은 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을 떠올리며 지은 시에요.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과 쓰고 싶은 글

 갱년기 때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힘들었는데 글쓰기 덕에 남들보다는 쉽게 갱년기를 보낼 수 있었어요. 그때 밤을 지새워 글을 쓴 적이 참 많아요. 글 쓰는 자체가 너무 좋은 거 있죠. 전 말재주가 정말 없는 거 같아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사실, 아들이 장애가 있거든요. 발달장애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 남 앞에 나서는 게 많이 두려웠어요. 자꾸 소심해지고 움츠러들었어요. 그래서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좋아요. 글을 쓰면서 제가 꼭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아들을 위한 글을 쓰는 거요. 나짐 히크메트가 감옥에서 쓴 시인 ‘진정한 여행’의 한 대목을 보면 ‘나의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 지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 시를 읽고 아들 생각이 났어요. 제일 쓰고 싶은 글이에요. 우리 아들을 위한 글.

최미연 시인은 지난해 함께 등단한 시인들과 손 하트를 만들며 기념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최미연 시인은 지난해 함께 등단한 시인들과 손 하트를 만들며 기념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

 장유문학회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사람들을 초청해 시화전 및 시 낭송회를 개최해요. 많은 분들이 참석해 시를 쓰는 즐거움을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는 요즈음, 책을 읽는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큰 목표이자 도전이 됐잖아요? 시를 읽는 사람은 더욱더 적어요.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쉽게 시를 접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우연히 버스정류장에 걸린 시 한편이 눈에 띄었어요. 장유 문인협회 회장님께서 “내가 쓴 시를 내 집 앞 버스 정류장에 걸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기에는 조금 어색한 버스 정류장이잖아요. 버스정류장을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시를 읽어준다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그런데 광고성을 띠는 거라서 그런지 금액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시를 걸지는 못했어요. 시민들에게 좋은 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

 김해 문인협회, 장유 가야예술진흥회 등 다양한 문학 단체에 가입하면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가까운 시일에 제 시집도 펴고 싶고 환갑이 되면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요.

장유문학회 시화전 및 시 낭송회 모습.
장유문학회 시화전 및 시 낭송회 모습.

 △등단 후의 변화

 등단을 하고 나니 글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고 함부로 남을 보여줘서도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등단하기 전에는 재미로 취미로 쓴 글을 조금 부끄러울지라도 공개했었는데…. 이젠 ‘시인이 글을 이렇게밖에 못 쓰는가’라고 생각할까 조심스럽고 막중한 책임감에 더 조심스러워졌어요. 퇴고를 많이 할수록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잖아요. 퇴고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시인이 되고 주변의 사물을 보는 관점 또한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혼자서 사고하며 글을 썼다면 시인이 되고 난 후에는 좋은 인문학 강의가 있으면 찾아가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와요. 그러다 보니 글 수준이 조금씩 나아지는 단계에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문학기행이 많은 도움이 돼요. 사물을 보고 와 닿을 때 좋은 글이 나오는 거 같아요. 또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도 좋은 글감이 돼요. 또 고향은 늘 제게 소중한 추억거리에요. 고향에 들르면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이 떠올라요.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좋은 영감이 많이 떠올라요. 지금은 배가 불러서 못 먹는 시절이잖아요. 학교에서 빵 한 조각이 나와도 싸 들고 가 동생들과 나눠 먹었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말이죠.

 △나는 이런 시인이 되고 싶다

 제 글이 대중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다가갔으면 좋겠고, 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쓰는 것에 만족해요. 긴 시 보다는 짧으면서 가슴에 와 닿는 시를 좋아해요.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어렵지 않고 참 쉽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저도 이런 시를 짓고 싶어요. 단순하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시요. 모든 이들은 시를 읽고 자신의 입장에서 읽잖아요.

 △취미

 어릴 적부터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마땅한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던 중에 장유 여성회에서 무료로 자전거 강습을 해준다고 해서 제 나이 50살에 처음으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처음에는 일반 자전거를 배우고 관심이 생겨 MTV자전거를 구입했어요. 시 외곽으로, 천문대로, 불모산으로 그렇게 다녔죠. 자전거를 타면서 남들이 못 느끼는 스릴을 느끼면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보통 사람들은 시인이라고 하면 순수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녔다고 생각해요. 시인이라고 다 순수하다는 건 오해랍니다. 시로 욕도 할 수 있는걸요. 하하.

 △우연히 내게 찾아온 시

 어떤 때는 일주일에 2, 3편의 시가 써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한 달에 1편도 안 써질 때가 있어요. ‘이런 글’이라는 시는 생활 속에서 우연히 제게 찾아왔죠. 한 날 아파트 후문으로 걸어 나가는데 의자에 ‘개씨들아 담배꽁 버리지 말라 인간들’이라고 적혀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우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시를 지었어요. 우연찮게 생활 속에서 만들어졌죠.

 글 쓰는 게 너무 좋아 시인이 됐다는 그녀는 대중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그냥 시를 적는 게 좋아서 틈틈이 한 편 두 편 시를 짓다 보니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또 이런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는 그녀. 최미연 씨는 현재 중년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다. 봄을 닮은 싱그러운 미소가 녹아있는 최미연 시인의 시는 월간 종합문예지 문학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런 글

 아파트 후문 나가는데

 낡은 의자에 적힌 글

 개새 들담배 꽁 버리지 맙시다

 한참 웃었다

 누가 쓴 글인지

 돌아오다 또 웃었다

 개새 들

 담배 꽁 버리지 맙시다

 사람이 아닌

 개새만 피는 담배 꽁

 봉정암

 깊은 산골 하늘 아래 산 끝자락

 산기슭 어귀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

 폭포 되어 떨어지고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

 맑다 못해 옥구슬 같아라

 닦아도 닦아도 저리 빛날까

 반질반질한 무수한 돌

 속세를 떠나 이곳에 앉으니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네

 바위의 장엄함은 하늘을 찌르고

 푸르다 못해 청록으로 휘감은 산

 병풍처럼 접어놓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던 곳

 깔딱 고개 깔딱 넘으면

 들려오는 목탁 소리

 스님의 염불 소리

 천상이 따로 있더냐

 바로 이곳이 천상이네

 

 찔레꽃

 어디에선가

 바람결 타고 날아드는 그리움 저편에

 묻어오는 짙은 향수

 유달리

 강가에 많이 피어 있는 건

 강물 따라 흘러가버린님

 기다리는 것일까

 흘러가는 저 강물 위로

 가슴속 묻어 둔 그리움의 조각들

 하나둘 엮어 종이배에 띄워 보낸다

 혹여 먼 훗날

 이 그리움의 조각들이

 강물 따라 흘러 흘러 그대 곁에 닿으면

 어디에선가

 찔레꽃 향기 같은 바람결로

 그대 소식 날아들려나

 네가 그리운 날

 네가 그리운 날은

 하늘이 맑은 날도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도 아닌

 비가 내리는 날이다

 잊어버리고 살다

 가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그리움

 인생이란 되돌이표가 있다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으련만

 인생엔 되돌이표가 없구나

 인생 열차는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른 채

 쉬지 않고 달려만 가는데

 우리

 어느 인생 간이역에서

 우연히 비 오는 날

 약속이라도 한 듯

 그런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