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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11개월 만에 최고 음역 노래… ‘끝내주는 소리’로 무대 감동 선사
유학 11개월 만에 최고 음역 노래… ‘끝내주는 소리’로 무대 감동 선사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5.0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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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이 좋다 사람이 좋다, 소프라노 성정하 인제대 겸임교수ㆍ가야 오페라단 예술감독
늘 긍정적인 사고가 노래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소프라노 성정하 씨는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
늘 긍정적인 사고가 노래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소프라노 성정하 씨는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

27살 음대 입학 첫 음악공부 시작

테너 정광 선생 만남 ‘인생 터닝포인트’

37살 때 딸과 이탈리아 유학 생활

70살에도 빨간 드레스 입고 무대 서고파

책 통한 간접 경험 무대에서 큰 도움돼
운동으로 자기 관리는 ‘365일 철칙’
영남의 아름다운 소리 발굴 힘쓸 것

20대 후반 음악 시작 때
‘소리 하나는 끝내주게 좋아’
라는 말은 음악 기초가 없는
나에게 큰 힘이 돼 줬어요

 세계 곳곳 음악도시의 거리에 깃든 웅장하고 화려한 선율에 이끌려 본 경험이 있는가. 링컨 센터,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 베르사유 오페라 로얄, 파리 오페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볼쇼이 극장,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콜론 극장, 산카를로, 라스칼라는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오페라하우스 들이다. 그중에 이탈리아는 클래식 음악의 성지로, 수많은 거장들의 탄생지이자 열정적인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연을 품은 이탈리아 도시의 골목을 따라 거니는 여행에 음악이 더해지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오페라의 시작점이자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현재는 김해의 대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성정하 씨를 만났다. 무대에서 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실제로도 당당함과 유쾌함으로 가득 찬 밝은 성향의 사람이었다.

 -가야 오페라단 예술감독을 맡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제 남편이자 가야오페라단 단장인 강동민 씨가 비영리단체 가야오페라단을 창립했어요. 처음엔, 한없이 베풀기 좋아하는 남편이 과연 문화ㆍ예술 단체인 가야오페라단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어요. 그러다 제자들이 졸업 후 혹은 유학을 다녀온 후 무대에 설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그런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했어요. 좋은 소리를 가진 성악가들은 많은데 그 무대가 한정돼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죠. 사실 영남권에도 서울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소리를 가진 성악가들이 많거든요. 성악을 전공하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금전적인 부담이 크잖아요. 하지만 그들이 대중음악에 비해 빛을 못 보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후학 양성을 하는 입장에서 지방에 있는 좋은 소리를 가진 친구들이 빛을 볼 수 있게 하고자 2~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예술 감독으로 활동했죠.”

성악가 아내를 위해 직접 오페라단을 창단한 강동민 가야 오페라단 단장과 그의 아내 소프라노 성정하 씨.
성악가 아내를 위해 직접 오페라단을 창단한 강동민 가야 오페라단 단장과 그의 아내 소프라노 성정하 씨.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나요?

 “어린 시절부터 국문학을 전공해서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다독상을 한번 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책 읽는 게 좋았어요. 그런데 국어 선생님께서 시인이 되면 가난하게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같은 성씨를 가진 음악 선생님께서 새로 부임해 오셨는데 성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게 관심을 보이셨죠. 하루는 제게 “정하야 너는 커서 성악가가 돼라”고 하시더라고요. 성악가가 뭔지도 몰랐던 저는 그때부터 성악가란 직업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집에 흑백텔레비전이 생기고 우연히 ‘가곡의 향연’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는데 화면 속 백남옥 선생님과 정광 선생님을 보고는 ‘언젠가 꼭 함께 무대에 서야지’라고 결심했어요.”

 -늦은 나이 음악 시작을 하셨다고요?

 “27살에 음대 1학년생으로 입학했어요. 기존 재학생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레퍼토리가 적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좋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주변에서는 저더러 끝까지 음악 공부를 하라고 했죠. 31살에 음대를 졸업해 바로 영남대학교 음악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사실 영남대 대학원에 정광 선생님께서 계시는 걸 알고 영남대 대학원에 지원했어요. 입학할 때도 실기를 평가하셨던 교수님들께서 제 목소리가 좋다고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대학원 졸업할 때쯤에는 정광 선생님께서 유학을 권하시더라고요. 그렇게 37살의 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어요.”

 -이탈리아 생활은 어땠나요?

 “37살의 나이에 시작한 이탈리아 유학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이미 결혼을 해서 초등학생 딸아이를 뒀기 때문에 딸아이와 함께 이탈리아로 갔어요. 이미 한국에서 초등학생이었던 딸, 다현이가 이탈리아에서 적응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학교에서는 까만 머리의 동양인, 다현이에게 온갖 관심이 쏠렸고 아이는 이유 없이 투정 부리며 도통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아이를 위해 방을 꾸미고 또래 친구들을 초대해 매일같이 놀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2~3개월이 지나니 다현이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초반에 힘든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4년간의 이탈리아 생활이 너무 행복했어요. 음악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간 이탈리아에서 노래가 잘되니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죠. 조수미를 길렀던 유명한 소프라노 발렌티니 선생님을 만나서 음악 공부를 했어요. 스텔라 선생님을 만나 소리공부를 했고, 젠띨레 선생님께 발성공부를 배우면서 하나씩 하나씩 다듬어 갔어요. 이탈리아 푸치니 국립음악원을 졸업할 때는 만장일치로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제가 유학길에 올랐을 땐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간 건 아니었어요. 끝까지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잘 풀린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음대에 다닐 땐 고음이 되지 않아 메조를 맡아 했어요. 메조소프라노는 여성의 가장 높은 음역인 소프라노와 가장 낮은 음역인 콘트랄토(알토)사이의 음역을 뜻해요. ‘메조(Mezzo)’는 ‘반’ 또는 ‘중간’이라는 뜻이에요. 그때 당시에는 고음이 되지 않던 제 자신이 싫었어요. 제 소리를 들은 누군가는 메조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소프라노라고 했어요.

 이탈리아 유학 동안 내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확실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정광 선생님께서 ‘너는 메조가 아니다. 네가 이탈리아에 가서 더 높은 음역대로 거듭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라고 하셨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이웃과의 소음 문제로 법정 규정시간 내에서만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규정시간 내에는 오직 연습만 했죠. 이탈리아로 간 지 11개월 만에 한국에서 무대에 설 일이 있어 잠깐 귀국했어요. 창원성산아트홀에서 안산시립합창 초정연주회 특별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고 지냈던 선생님께서 제게 그러셨죠. ‘도대체 지난 11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나의 음악 인생 처음으로 이런 급격한 변화를 본다고. 놀랍다’고 하셨죠. ‘콜로라투라’는 소프라노 중에서 가장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내며 복잡한 꾸밈음이 있는 곡을 화려한 음색으로 부르는 소프라노에요. 메조였던 제가 콜로라투라가 될 수 있었던 건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 같아요. 이날을 계기로 전 노력한 거에 대한 결과치가 분명히 따른 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중저음과 고음 두가지 소리를 낼 수 있는 게 제 무기가 됐죠”

 -노래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해에서 문화 예술을 꿈꾸며 살아온 사람답게 우리 고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서울에서 노래할 수 있었던 기회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디에서 노래를 행복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서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무대를 섰지만 우리 지역의 관객 수준은 매우 높은 것 같아요. 무대에서 들리는 관객들의 환호성과 많은 성원에 자신감이 생기며 큰 힘을 얻어요. 우리 지역 관객들은 정말 훌륭한 매너를 가지고 있어요.”

지난달 9일 김해문화의 전당 마루홀에서 열린 신춘 음악회에서 소프라노 성정하 씨가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달 9일 김해문화의 전당 마루홀에서 열린 신춘 음악회에서 소프라노 성정하 씨가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요즘 고민거리가 있나요?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이게 제 고민이에요. 70살이 돼도 빨간 드레스를 입고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길지 않잖아요. 노래하다가 죽을 수 있는 인생을 선물 받았다는 것에 정말 감사해요. ‘다음 생애도 소프라노가 되고 싶은가요?’라고 물어볼 거죠? 기자님. 100번을 물어도 정답은 똑같아요. 네. 음악에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잖아요.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 작사 작곡을 하는 사람들, 지휘자들, 노래하는 사람들…. 노래를 하는 음악인들은 몸이 악기잖아요. 많은 관리가 필요하고 절제가 항상 따르지만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을 다 누릴 수 있는 멋진 일인 것 같아요.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수많은 감성과 감정들에 가슴이 벅차올라요. 때로는 육체가 힘들 때도 있지만 수많은 스토리를 가진 음악으로 정신은 항상 풍요로워요.”

 -성악가로서 자기 관리 비법이 있나요?

 “운동이요. 철두철미한 운동으로 악기(몸)를 만들어요. 연주회, 리셉션 끝나고 새벽 2시에 집으로 돌아와도 3시 30분까지 운동하고 잠자리에 들어요. 365일 저만의 철칙이에요.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담백한 음식 위주로 섭취하며 인스턴트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아요. 또 술은 항상 절제해요. 그리고 생각을 항상 어리게 하려고 하는 편이라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해요. 반면에 부정적인 얘기를 하고 늘 고민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과 대화는 피하는 편이에요.”

 -슬픔과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비관적이거나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책을 읽어요.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죠. ‘테스’의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해요. ‘성악가라면 책은 꼭 많이 읽어라’고 얘기해요.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처럼 성악가들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많이 나누면 실제로는 너무 많은 비판이 따를 수 있잖아요. 책을 통해 주인공들에게 얻을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은 노래하는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 못하고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 비련의 주인공, 결혼식에 남편이 나타나지 않아 광란과 슬픔에 빠진 여자를 연기하는 것도 다 책을 통해 했던 간접 경험이에요.”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또는 무대가 있나요?

 “어린 시절, 흑백텔레비전에 나왔던 정광 선생님은 훗날 제 스승이 됐어요.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실 때 제자가 됐죠. 늦은 나이에 음악 공부를 시작한 제게 유학을 권유하며 남편을 설득했어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돼 주신 정광 선생님을 너무 존경해요. 또 백남옥 선생님을 실제로 만나 함께 무대에 선 날이요. 백남옥 선생님을 뵙고는 ‘디바는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를 느꼈죠. 선생님께서는 우리 것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드레스가 한복이라면 어떨까?’ 하시더라고요. 독도에서 한복을 입고 꼭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얼굴이 아른거리네요. 선생님은 서구적으로 생긴 외모와는 달리 도도함과 고고함을 가진, 그 속에서도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계세요.”

 소프라노 성정하 씨는 지난 28일 김해 서부문화센터에서 개최된 ‘폴 포츠, 기적을 노래하다’에서 폴 포츠와 멋진 협연을 보였다. 그녀의 솔로 무대에서는 루이지 아르디티의 ‘입맞춤’과 이은상 시, 채동선 곡의 ‘그리워’를 불러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었다. 앞으로도 가야오페라단 예술 감독으로서 영남의 아름다운 소리를 발굴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성정하 씨는 오늘도 빼곡하게 채워진 하루일과를 알차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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