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3:26 (금)
오늘의 꽃, 동백꽃
오늘의 꽃, 동백꽃
  • 정창훈
  • 승인 2019.04.30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창훈 대표이사
정창훈 대표이사

 

 동백꽃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바닷가 섬마을에 너무너무 금실이 좋은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남편이 육지에 볼일이 있어 배를 타고 떠났다. 남편이 약속한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애타게 기다렸다. 바닷가에서 지나가는 배를 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간절한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가슴에 병이 응어리가 돼 자리에 드러눕게 됐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 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병든 아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숨을 거두기 전 아내는 "내가 죽거든 남편이 돌아오는 배가 보이는 곳에 묻어주세요"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아내의 시신을 묻어줬다. 장사를 치르고 돌아오니 집 앞 뜰에 흑비둘기 떼가 날아들어 우는데 "열흘만 기다리지… 남편이 온다. 원수야 열흘만 일찍 오지 열흘만…"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날로부터 열흘이 지난 후에 남편은 배를 타고 돌아왔다. 돌아온 남편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 한없이 목 놓아 울었다. "왜 죽었나? 열흘만 더 참았으면 백년해로할 수 있었을 것을… 원수로다. 원수로다. 저 바다가 원수로다. 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 가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아…"라며 통곡을 했다. 남편은 아내 생각에 매일 무덤가에 와서 슬피 울다 돌아가곤 했는데, 하루는 아내의 무덤에 전에 보지 못하던 조그마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에 붉은 꽃까지 피어있었다. 그 꽃은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꽃이 동백꽃이라고 한다.

 야외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꽃으로 희망을 상징하는 동백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진실한 사랑 의미와 더불어 엄동설한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청렴과 절조`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어느 날 단박에 떨어지는 너의 사체가 무섭고 두렵지만 난 동백꽃을 좋아하게 됐다.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머릿속에 살아나는 대상이 되고,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는 언어가 되는 동백꽃. 그 붉은 꽃잎은 시가 되고, 꽃잎이 떨어지는 것조차 언어가 된다. 시린 겨울에 피어나는 것도 시가 된다. 동백꽃은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다. 동백꽃에 어려 있는 향수에 빠지면 다소곳이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누나의 모습도 보인다.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는 누나는 동백꽃이 돼 거울 속에 들어가 곱디곱게 다소 곶이 앉아 있다.

 언젠가 지인들과 거제 해안 길을 달리면서 마주한 동백나무 가로수는 끝이 없었다. 잠시 떠오른 시상으로 `동백길`이라는 시. 겨울을 안고 거제 해안을 달린다/ 신의 부름으로 인간이 수놓은/ 동백의 세상이 아름답다/ 사계절 도톰한 녹색 잎은/ 진한 바닷물처럼 윤기가 흐른다/ 한겨울에도 뜨거운 여인으로/ 기다림이 피가 된 빨간 꽃/ 희망과 행복을 간직한/ 향기보다 더 진한 노란 빛/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붉은 동백꽃. 아름답고 슬픈 꽃이다.

 `겨울에 피는 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물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백꽃이라고 한다. 그만큼 동백나무는 우리에게 친근한 식물이다. 그런데 우리가 겨울꽃이라고 알고 있는 동백나무는 겨울에만 꽃이 피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 10월부터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해 3월에 절정에 이르며 4월까지 꽃을 피우면서, 거의 일 년에 반을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런 연유로 동백나무를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 추백 그리고 동백이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위에는 사시사철 다양한 꽃과 정원수가 늘 주민들을 반기고 있다. 어느 날, 커다란 나무 사이에 가끔씩 스쳐 가는 햇빛을 받으면서 아주 작고 가냘픈 동백나무가 보였다.

 화려한 동백꽃은 언제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꽃을 피우기 전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는데,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동백꽃 한 송이와 한 몸이 돼 있었다. 앙증맞은 동백꽃은 작은 흔들림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꽃이 커져가고 있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보여줄지 모르지만 동백꽃이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며칠 동안 조석으로 찾아가서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안녕`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돌아서면서도 인사를 했다 `또 올게` 하면서.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는 한없이 걱정했지만 잘 견디고 있었다. 모처럼 주말에 여유롭게 동백꽃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동백꽃은 없었다. 누군가 동백꽃이 탐이 났는지 그냥 손으로 뽑아 간 것 같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진 않았는지 그 자리에 흙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동백나무를 뿌리째 뽑아 간 사람은 동백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꽃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뽑아가려거든 부삽이나 호미를 이용해서 동백나무 주위를 적당히 파서 뿌리도 다치지 않도록 해서 가져갔으면 살아있을 것 같은데… 주위에 있는 따스하고 정이 든 흙도 함께 가져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봤다. 걱정이 앞선다. 외롭지만 꿋꿋하게 그 자리에서 행복해 보였던 동백꽃이 보고 싶다. 언제까지 동백꽃이어야 할까. 피기 전에도, 피는 순간에도, 피고 나도, 가슴 속에서 다시 피어나도 나에게는 영원히 동백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