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8:17 (금)
우리는 사실 잘 듣지 못한다
우리는 사실 잘 듣지 못한다
  • 하성재
  • 승인 2019.04.2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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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하성재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배너(David G. Benner)의 말처럼 경청 능력의 성장을 막는 주된 걸림돌은 우리 대부분이 이미 스스로 잘 듣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데 있다. 우리 스스로 잘 듣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심리상담자들에 따르면 내담자들의 다수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이유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함은 말만 많아서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관계를 이룰 수도 없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경하는 친밀함은 일방적 대화를 통해서 또는 경쟁처럼 느껴지는 교류를 통해서는 실현될 수 없다.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려면 다른 목소리들과 별개로 내 목소리만 찾아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목소리를 찾도록 해줘야 한다. 경청에 대한 글을 많이 쓴 애덤 맥휴(Adam S. McHugh)는 "경청은 우리의 정신, 관계, 사명, 문화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중심이 돼야 하며, 무슨 일에 임할 때든 먼저 듣는 게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경청이 아닌데 경청이라고 착각하는 `가짜 경청`들이 있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척하면서도,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나도 힘들었다고 되받아치고, 눈앞에서 상대가 말하고 있는데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말을 꺼낼 타이밍을 보고 있다.

 "그 정도 가지고 뭘…? 나는 말이야…" 상대의 이야기를 말없이 쭉 듣는 이유가 더 좋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것을 능가하기 위해서라면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경쟁이다. "어, 그거 대단한데. 그런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교묘하게 말을 돌리는 것이다. 칭찬 같은데 아니다. 결국 말하는 사람은 듣는 이의 속셈을 모르게 된다. "삼일 전에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마치 용의자를 심문해 자백으로 유도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말이지…." 그냥 자기가 말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로 넘어간다. 기어이 자기가 원래 하려던 말을 하고야 만다. "그건 이렇게 하면 되지." 수리공처럼 문제를 진단해 자신이 고쳐주려 한다. "주말을 잘 보냈는가? 나는 말이지…" 이것은 질문을 던지는 형식을 갖지만 진짜 의도는 자기가 답하려는 것이다. 자문자답할 거라면 상대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특히 상대가 말하는 동안에는 묵묵히 있다가 그다음부터 아무거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마치 야간에 두 척의 귀먹은 배가 마주 지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대화하는 게 아니라 타인 앞에서 독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청을 잘할 수 있을까? 잘 듣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경청 수업이나 세미나를 통해서 능동적 경청, 풀어서 말하기, 거울처럼 반영해 주기 등을 배울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의 경청 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이런 기술이 아니다. 듣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최선의 길은 잘 듣는 사람 옆에 붙어있는 것이다. 경청을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활동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어렸을 때 누군가 잘 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태어날 때 잘 들어주는 부모를 만날 만큼 누구나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경청이 결핍된 상태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잘 듣는 사람을 찾아서 곁에 두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경청만 제대로 해도 문제의 80% 이상이 해결된다고 한다. 경청은 상대의 생각과 감정과 신념을 비판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두며, 상대의 말을 내 기준으로 걸러내지 않는 것이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기준으로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이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그 길을 피한다. 얼른 판단해서 금방 조언을 하고, 진도를 나가기 원하기 때문이다. 경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 자체만이 아니라 상대가 말하는 방식까지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논리와 추론을 최대한 많이 구사하지만 어떤 이들은 말에 감정을 담는다. 유머로 고통을 에둘러 가려는 이들도 있고 과장법을 써서 중요한 일에 주목을 끄는 이들도 있다. 잘 듣는 사람은 각자의 개인적 방식을 가지고 있다.

 "내 말을 들어줄 한 사람만 있다면…"이라고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사람은 없는가?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있는 동기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해주는 진정한 경청을 향해 한 걸음 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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