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전성 시대’의 종언
‘내로남불 전성 시대’의 종언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4.1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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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절벽에 서서 높이 비상할 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비상할 때 다른 사람은 추락하면서 비명을 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는 ‘유리병 이력서’를 던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절벽에 서야 날지 떨어질지 알 수 있다. 배를 탄 어부는 거친 파도를 만나야 용기가 솟든지 절망에 빠지든지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나 천재일우의 기회에 서야 극명한 선택을 한다. 제대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때 알 수 있다.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도 남들에게 매몰차다. 예전보다 더한 ‘내로남불 전성시대’를 살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처럼 아름답고 남이 하면 불륜처럼 추잡스럽다. 장관 후보 청문회에 이어 헌법재판관 후보 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내로남불의 전시장이 됐다. 개인사를 포장하는 언변은 뒤로 하고 “저 정도…”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위 공직자에게 청빈하게 살라고 닦달할 순 없지만 그들은 재물을 모으는데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드러났다. 그들의 돈은 잡을 기회가 올 때,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돈을 탐하는 쪽으로 기운다. 보통 사람에겐 좀체 올 수 없는 기회를 그들은 절벽을 디딤돌 삼아 하늘을 난다.

 35억 원대 주식을 소유할 뿐 아니라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의 재판과 소송을 해온 점이 문제가 된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주식 거래는 “남편이 다 했다”며 의혹에서 자신을 뺐다. 앞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를 두고 “아내가 다 했다”고 한 후 사퇴했다. 보통 사람은 그만한 거액을 대출받을 수 없는데도 김 전 대변인은 돈을 은행에서 빌려 알짜 건물을 샀다. 노후 대책을 내세워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월찮은 돈 벌이는 아닌데 김 전 대변인은 턱턱 해냈다. 보통 사람은 돈 벌이하는 절벽에 섰을 때 떨어졌을 터인데 이들은 비상했다. 사람은 절벽에 섰을 때 바른 사람인지 그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마냥 걸을 땐 알 수 없는데 눈앞에 가파른 절벽이 버티면 그때 자신이 돈을 밝히는지 명분을 밝히는지 알 수 있다. 다 함께 걷는 길에서 누군들 바른 사람이 아닐까. 보통 사람에게 절벽이 다가오면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잡으면 된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는 기회를 탐할 땐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돈의 유혹은 자연스럽다. 자본주의가 만개한 마당에서 돈은 삶을 충만하게 하는 고마운 친구다. 돈의 손짓에 대부분의 사람은 자연스레 반응한다. 그렇지만 돈을 버는 링에서는 공정한 룰을 따라야 상대가 다치지 않는다. 격투기의 최고봉인 UFC 경기에서 한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고 8각형 링에서 주먹을 휘두르면 상대는 힘을 제대로 못 쓰고 꼬꾸라진다. 재미있다고 환호를 한 관중은 나중에 약물 복용이 밝혀지면 부아가 치민다. 고위 공직자는 보통 사람은 만질 수 없는 정보나 직위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부를 채우면 안 된다. 자본주의 링에서 누구는 약물을 먹고 길길이 날뛰고 누구는 맨정신에 헛발질만 하면 게임은 하나 마나다. 청문회에 나오는 대단한 사람들은 부를 축적한 경로가 산뜻하지 못하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방법을 동원해 부를 쌓았다. 자본주의가 열어 둔 무한한 욕망의 전철을 타고 가면서 남 몰래 먼저 총을 뽑는 파렴치한도 수두룩하다. 지금 청문회장에서 보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은 정당한 방법을 강변하지만 보통 사람이 보면 가슴이 무너질 일이다.

 진실한 말은 사실과 일치하는 말이 아니고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청문회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과 하나를 만든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자신만의 진실을 탓할 순 없지만, 이상한 말과 행동의 합치가 사회를 변화시키면 곤란하다. 청문회에서 나타난 고위 공직자의 삶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우리 사회는 지탱되기 힘들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는데, 더 높은 자리에 가면 배를 더 불리기 위해 또 다른 허튼짓을 할 공산이 크다. 약물 복용은 순간 힘을 올려 상대를 제압하고 승리에 도취하게 만들지만 상대 선수는 인생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절벽에 서서 높이 비상할 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비상할 때 다른 사람은 추락하면서 비명을 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는 ‘유리병 이력서’를 던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몇몇 사람이 읽고 고개를 끄떡여도 안 된다. 미사여구로 꾸며진 이력서를 원하지 않는다. 공익에 합하는 사실로 가득 차야 한다. 공익에 일치하는 말과 행동은 사회를 바르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청문회장에서 편법을 이용해 자신의 배만 불린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자신만을 위해 편법을 당당하게 쓰고도 내 양심에 비춰 정당했노라고 고개를 쳐드는 고위 공직자를 보고 싶지 않다.

 절벽에 서서 개인 욕심에서 돋아난 날개로 난 사람은 청문회장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절벽에서 떨어진 사람을 청문회장에 세워야 한다. 우리는 내로남불의 전성시대와 종언을 구해야 한다. 자신이 청문위원일 땐 자료 제출이 미흡하다고 호통치다 정작 자신이 장관 후보자가 되자 자료 제출을 안 하는 이중 잣대를 보인 행동은 수용하기 어렵다. 절벽에 내몰릴 때 공익의 잣대를 대는 사람이 많아야 내로남불은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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