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1:06 (금)
“낙후된 장유 옛 교류지 ‘무계리’ 재생을 꿈꾼다”
“낙후된 장유 옛 교류지 ‘무계리’ 재생을 꿈꾼다”
  • 김용구 기자
  • 승인 2019.04.09 2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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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김해 전통마을을 찾아서...무계ㆍ광석마을
김해 무계리 광석마을에는 1919년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난 전통시장이 위치해 있다. 사진은 옛 무계시장 전경. / 장유면지
김해 무계리 광석마을에는 1919년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난 전통시장이 위치해 있다. 사진은 옛 무계시장 전경. / 장유면지

00년 왕버들 수호 ‘무계마을’ 육로ㆍ수로 발달 교통요지
80년 전통 양조장 자취 감춰 1천322㎡ 가축시장 열리기도
3ㆍ1독립운동 중심 ‘광석마을’ 장유중앙시장서 3천명 참여
청동기시대 대형 지석묘 보존 2022년까지 도시재생 추진해
“옛 자원 활용 마을 활성화 기대”

 김해 무계리는 무계천 배후 습지에 위치해 있으며 장유지역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평야를 가진 곳이었다. 이 때문에 논농사가 주를 이뤘지만 대부분 도시개발 사업 부지에 편입되면서 현재 그 모습을 찾기 힘들다.

 이곳은 원래 유하면에 속했지만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장유면에 편입됐다.

옛 장유 유통의 중심지였던 김해 무계마을에는 2그루의 정자나무가 있다. 위 사진은 무계1구 정자나무, 아래는 무계2구 정자나무.
옛 장유 유통의 중심지였던 김해 무계마을에는 2그루의 정자나무가 있다. 위 사진은 무계1구 정자나무, 아래는 무계2구 정자나무.

 예로부터 김해 구도심과 장유를 잇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으며, 현재도 창원과 김해를 잇는 금관대로와 부산 등과 연결된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을 끼고 있는 나들목이 있다.

 무계리 남쪽에는 동서로 뻗은 대청천이 위치한다. 동쪽에는 용두산(114m)이 있으며 인근에는 장유무계 택지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북동쪽으로는 돌과 바위로 이뤄진 야트막한 방구산이 위치해 있다.

 대청천을 따라 전통마을인 무계(茂溪)마을이, 이와 인접한 북쪽으로 광석(廣石)마을이 자리한다. 최북단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이뤄진 현대화 마을인 석봉마을이 있다.

 ◇장유 옛 도심 무계마을= 무계마을은 대청천에 제방을 만들면서 생겨난 자연마을이다. 지명 그대로 크고 작은 하천이 많다.

 하천과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은 물론 육로와 수로가 통하는 지리적 이점으로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대를 이어 거주하기보다는 유동 인구가 많았다.

1960년대 현 장유 농협 삼거리 인근에는 장유우체국(위 사진ㆍ장유면지 제공)이 위치해 있었다. 현재는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1960년대 현 장유 농협 삼거리 인근에는 장유우체국(위 사진ㆍ장유면지 제공)이 위치해 있었다. 현재는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장유면지에 따르면 1914년 수남면과 장유면이 병합되면서 면 소재지를 형성, 김해 서남부지역의 중심지가 됐다. 지난 1908년에 설립된 중앙교회는 관동교회와 함께 장유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이다.

 1960년도 전후에는 중학교 과정인 팔판공민고등학교가 운영되기도 했다. 지역 토박이 감응관 주민협의체 위원장(67)은 “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인근 장유중학교로 진학했지만 학비가 부담돼 못 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공민학교는 그 대안책이 됐다”고 설명했다.

 무계마을에는 정자나무 2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대청천과 가까운 무계1구 포구나무는 개울에서 떠내려와 자연적으로 생착했다고 알려져 있다.

 300m가량 떨어진 무계2구 정자나무는 마을제를 올리는 당산나무이다. 높이 13m, 둘레 4.7m 왕버들로 수령은 300년을 훌쩍 넘는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김해 무계ㆍ광석마을의 ‘삶의 터전’이었던 옛 대청천 전경(위 사진ㆍ장유면지 제공)과 현재 모습(아래).
김해 무계ㆍ광석마을의 ‘삶의 터전’이었던 옛 대청천 전경(위 사진ㆍ장유면지 제공)과 현재 모습(아래).

 이 나무 옆에는 1천322㎡(400평) 규모의 가축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1977년 농촌소도읍가꾸기 사업이 진행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감 위원장은 “소를 팔던 곳이라 소전거리라고 불렀는데 광석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냇가로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쳐야 했다”며 “서류 작업 등을 하던 작은 사무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1937년 준공된 무계다리는 장유 남북을 잇는 가교였다. 넓이가 차량 두 대가 겨우 교차해 지나갈 정도였다. 1978년 여름 비가 많이 와 붕괴되기도 했지만 1980년에 재건됐고 2010년에는 4차로로 확장됐다.

 이 마을에서 40여 년을 거주한 김모 씨(74)는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닥을 드러낸 대청천 바닥에서 물건을 사고 팔았다”며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 붐비면 비가 내린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현 김해 무계동 장유 농협 삼거리에 위치해 있던 1969년도 면사무소(위 사진ㆍ장유면지 제공)와 그 자리에 들어선 9층 규모의 청하프라자 건물.
현 김해 무계동 장유 농협 삼거리에 위치해 있던 1969년도 면사무소(위 사진ㆍ장유면지 제공)와 그 자리에 들어선 9층 규모의 청하프라자 건물.

 이 마을에는 기와집으로 만들어진 제법 큰 규모의 단층 양조장도 있었다. 정인용 씨가 대를 이어 80년째 운영하다가 도로 확장으로 편입돼 인근 상봉림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이곳 역시 10여 년 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결국 사라졌다.

 김씨는 “어릴 때 주전자를 들고 탁주를 사러 갔다가 몰래 먹기도 했다”며 “결국 얼굴을 빨개져서 혼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3ㆍ1독립운동 성지 광석마을= 광석마을에 중앙에는 지석묘가 위치해 있다.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유추되며, 덮개돌 규모만 길이 6.1m, 너비 2.9m에 이른다.

 또 다른 마을 주민은 “1960년대 중반 지석묘 서쪽에 큰 수양버들이 있었지만 1970년대 중반 고사했다”며 “여름이 되면 이 나무가 지석묘 위에 그늘을 만들어 쉬곤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는 장유농협 삼거리 일대는 장유지역 최고 번화가였다. 1918년 무계마을에 있던 면사무소가 Y자 형태로 생긴 현 농협 삼거리 북쪽으로 이전해 왔다. 지금 그 자리에는 9층 규모의 청하프라자 빌딩이 들어섰다.

 삼거리 서쪽 장유우체국에는 6층짜리 상가 건물이, 동쪽 정미소 자리에는 아파트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청아빌딩 북쪽으로는 장유중앙시장이 있다. 예전에는 장유장이라고 불렸으며 3일과 8일에 장이 열렸다. 1914년 신문리 장터가 이곳으로 이전된 탓에 신문장이라고도 불렸다.

1960년대 중반 큰 수양버들이 있던 무계 광석마을 지석묘 전경.
1960년대 중반 큰 수양버들이 있던 무계 광석마을 지석묘 전경.

 장유면지에 따르면 장유장은 농사지은 쌀을 채소나 생선으로 교환하는 물물교환 시장으로 출발했다. 50여 년 전부터 소비자와 판매자가 뚜렷하게 구분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슬레이트와 기와로 지붕을 얹은 단층 가옥 형태의 상가가 들어섰다. 점포수는 40개에 달했다. 포장되지 않는 바닥에도 상인들이 난전을 펼쳐 장을 형성했다.

 장유장은 김해지역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대규모 3ㆍ1독립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919년 4월 12일 주민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이 시장으로 모여들었는데 그 인원이 3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헌병주재소를 포위했다. 하지만 헌병대가 총을 난사했고 총을 빼앗으려던 손명조ㆍ김용이ㆍ김선오 선생이 총에 맞아 순국했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는 주재소 건물 등을 파괴했지만 김해분견대에서 나온 기마대와 충돌해 김승태ㆍ김종환 선생 등 10여 명이 검거되면서 시위대가 해산됐다.

 1967년 내덕리 용두산에는 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3ㆍ1운동기념탑이 건립됐다.

 ◇구시가지 도시재생으로 부활= 장유 무계지구 일대는 도시재생사업으로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김해시는 오는 2022년까지 280억 원(국비 150억ㆍ도비 30억ㆍ시비 100억 원)을 투입해 장유전통시장을 낀 21만㎡ 부지에 9개 분야의 사업을 추진한다.

 이 사업으로 다어울림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조성하고, 장유 온천수와 김해평야 쌀을 이용한 80년 전통의 발효주를 생산하는 장유도가를 복원한다.

 폐공장과 방치된 방앗간을 활용하는 레지던시(예술가들에게 일정기간 창작생활 공간을 지원해 작품활동을 돕는 사업)사업도 추진한다.

 3ㆍ1만세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살린 장유 무계 역사문화자원 스토리텔링사업과 60년간 구도심 중심상권 역할을 한 신문장터(장유시장) 상권 활성화사업도 진행한다.

 감 위원장은 “개인적인 추억뿐만 아니라 지역 전통을 간직한 무계지역 옛 마을이 점차 쇠퇴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이번 재생사업을 계기로 옛 자원을 적극 활용해 마을이 더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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