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6:39 (목)
당신이 옷장에 감춰둔 해골은 없는가
당신이 옷장에 감춰둔 해골은 없는가
  • 이광수
  • 승인 2019.03.24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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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당신이 옷장에 감춰둔 해골은 없는가.`

 이 말은 어느 방송국 뉴스 앵커가 이번 청와대의 장관후보자 인사검정이 엉망이라고 비판하면서 인용한 멘트다. 이 말은 미 백악관 인사담당자가 장관 등 고위공직자 후보를 면담할 때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숨겨둔 비밀이 탄로나 망신당하지 말고 정직하게 이실직고하라는 어마무시한 엄포다. 미국 인사검정제도의 엄격함을 상징하는 이 말은 영ㆍ미권에서는 속담으로 굳어진 경구로 고위공직자 인사검정 때 자주 인구에 회자된다. 지난 8일 청와대는 교체대상 장관 후보자 7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자 언론과 SNS를 비롯해 야당과 사회단체에서는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 특정 기업 편향성, 이념 편향성 등을 제기하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그 진위 여부가 가려지겠지만 설령 청문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라 할지라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임명하면 국회도 어쩔 도리가 없다.

 국회 청문회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장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 행사이다. 그러나 국회 청문회를 통해 장관후보자의 자질과 청렴성을 검정해 국민의 알 권리충족과 여론형성에 기여할 수는 있다. 따라서 부적격자를 일방적으로 임명할 경우 인사권자인 대통령은 국민의 비난과 국정 불신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교체대상 장관들에게 제기되는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될 후보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67개 항목에 걸쳐 진행된다는 인사검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의혹들이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저번 인사청문회 때도 인사검정 시스템에 문제점이 제기돼 보완했다는데 이런 의혹들이 또다시 불거지는 것은, 청와대는 최선을 다해 지명했으니 국회에서 알아서 재검정해 보라는 식의 책임회피로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장관후보자들에 대한 의혹들을 살펴보자.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보유 아파트가 3채나 돼 다주택자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꼼수 증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더욱이 주택문제 담당 부서인 국토부 차관까지 했던 사람이 아파트 과다보유와 편법증여를 했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지금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 발동으로 아파트값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그 원죄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국토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는 것은 장차 부동산 정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모 신문사의 대기자가 `지금까지 이런 장관후보자는 없었다`는 레이아웃을 달 정도로 비판하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지방소재 대학 재직 시 처제 명의로 구입한 집에 기거하는 식으로 아파트를 차명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SNS를 통해 쏟아낸 정제되지 않은 저속한 발언들과 이념 편향성 논란으로 야당으로부터 후보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비판이 일고 있다.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부인 명의로 구입한 용산구의 땅이 재개발되면서 16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중소기업부 장관후보자는 낸 세금을 모르고 또 냈다가 되돌려 받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후보자는 장인이 후보자의 부인에게 증여한 경기 양평 땅이 도로가 생기다가 급등했는데,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아 농지법 위반으로 역시 부동산 투기 의혹을 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CJ, 롯데, 메가박스 3개 기업이 극장업(상영)과 영화유통업(배급)을 독과점(92~97%)해 도종환 장관 시절 반독점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아직 계류 중인 상태에서 CJ 사외이사였던 그가 장관이 되면 법안 통과가 불가능할 거라고 우려한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 대책위 등 시민단체는 지난 18일 프레스 센터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박 장관 임명을 실력으로 저지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7명의 장관후보자 중 5명의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 특정 기업 편향, 이념 편향성 등으로 의혹을 사고 있으며,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발탁된 인사들은 장관후보자가 아니었더라도 사회적으로 지도자에 속하는 엘리트 계층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인식하고 있는 지성인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장관후보자의 적격성에 대한 검정을 소홀히 한 청와대 인사검정라인의 오만함과 장관직 수락 여부에 대한 자기성찰이 부족했던 후보자들의 몰염치가 역겹다.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바르게 이끌어갈 수레바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부적격자가 임명되면 국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유능하고 청렴한 인재가 발탁됐다는 소리보다 의혹투성이 인사가 후보자로 지명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 인사검정 시스템에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됐다는 증거다. 인재의 보고라는 우리나라에서 `옷장에 감춰둔 해골이 없는 참신한 인물`을 발탁하는 혜안을 지닌 리더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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