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고성 배둔장터 “만세” 함성 오늘에 감동 잇다
100년 전 고성 배둔장터 “만세” 함성 오늘에 감동 잇다
  • 이대형 기자
  • 승인 2019.03.2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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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고성 배둔장터에서 열린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에서 주민 1천여 명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지난 19일 고성 배둔장터에서 열린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에서 주민 1천여 명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창의탑 보존위, 재현 행사 백두현 군수 등 1천여명 참가
나팔소리 필두로 쏟아져 공약3장ㆍ만세삼창 외쳐
태극기 물결 100년 전 모습 유공자 배너전ㆍ디카시 걸개전

무료찻집ㆍ국밥나눔 등 마련

 100년 전 고성 배둔장터에서 울려 퍼진 그날의 벅찬 감동을 재현하는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가 19일, 고성군 구만면, 회화면 일원에서 열렸다.

 3ㆍ1운동 창의탑 보존위원회(위원장 최근호)가 주최ㆍ주관한 이번 행사에 백두현 군수, 박용삼 군의회 의장, 최근호 위원장, 국가유공자, 보훈단체장, 학생, 주민 등 1천여 명이 참석해 범 군민적인 행사로 치러졌다.

 이날 오전 9시 30분 구만면 용와리 국천사장(菊川沙場)에서 고성농요보존회의 나팔소리를 신호로 구만면 주민 15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참여주민들은 공약3장을 낭독하고 만세삼창 후 고성마라톤클럽의 마라토너 17명과 함께 회화119안전센터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이어 모든 참석자들이 회화119안전센터에서 회화면 창의탑까지 도보로 시가행진을 하며 다함께 한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의 물결이 어우러져 100년 전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을 다시 재현했다.

회화면 배둔리 거리를 따라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회화면 배둔리 거리를 따라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는 참가자들.

 11시 회화면 창의탑 앞에서 열린 기념식은 고성오광대보존회의 ‘독립의 북소리’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헌화 및 분향,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운동 참가자 개인약전 및 유족 소개, 백일장 및 디카시 당선작 시상,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백두현 고성군수는 “이번 기념행사는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만세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 유족들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최근호 3ㆍ1운동 창의탑 보존위원회 위원장은 “애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았으며 그 불굴의 용기는 늘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며 “그날의 값진 희생을 되새겨 순국선열들의 영령 앞에 깊은 경의와 추모의 예를 올리자”고 외쳤다.

 이날 부대행사로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유공자 배너전, 디카시 걸개전, 역대 백일장 수상작 전시, 무료찻집 및 국밥 나눔 행사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됐다.

 한편,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구만면에서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군중들이 회화면 배둔장터로 모이면서 시작됐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일본 헌병들의 총칼 앞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했다.

구만면 용와리 일원에서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가 열려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구만면 용와리 일원에서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가 열려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1971년 회화면에 3ㆍ1운동 창의탑을 세우고 이후 2008년부터 12회째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에 대해 최혜숙 주민생활과장은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선양하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재현행사, 시가행진 등 뜻깊은 행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의 염원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많은 군민의 참여를 바란다”고 했다.


 회화면 배둔장터에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1910년 이후 지속되던 일제의 무단통치는 일본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2ㆍ8독립선언과 고종황제의 붕어(崩御, 황제의 죽음을 일컫는 말)를 계기로 3ㆍ1 만세운동으로 전개됐다.

 3월 1일 학생대표들은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시민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파고다 공원의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가행진을 했고 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경남도의 시위운동은 초기에는 부산과 마산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는 데 그쳤으나, 3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치열한 시위 운동이 전개됐다.

고성 만세운동을 결의한 최낙종 선생.
고성 만세운동을 결의한 최낙종 선생.

 고성 최초의 만세 시위 운동, 민중에게 용기 줘

 3ㆍ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1919년 3월 15일 밤. 의열단에 가맹해 제1차 암살파괴사건에 관련됐던 진주사람 이주현이 고성읍 선동리로 박진택을 찾아왔다.

 이주현은 고성에서도 독립만세를 거행할 것을 설득하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후 돌아갔다.

 이에 배만두, 이상은, 김상욱 등은 함께 3월 17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만세시위 거사는 1차 배만두, 2차 이상은, 3차 김상욱이 각 학생, 기독교인, 농민을 동원해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계획했으나 사전에 누설돼 일본 헌병들이 배만두의 가택에 들이닥쳐 그를 검거하면서 결행되지 못했다.

 이때 동경정칙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고성읍에 와있던 안태원은 귀향 중에 있던 서주조와 협의한 후 고성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비밀화합을 거듭해 갔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지금 각지에 있어서는 일개 농부까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고성은 무엇 때문에 이를 결행하지 않는가? 지금이야말로 수수방관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해 학생들에게 애국궐기 운동을 호소했다.


 이에 안태원, 서주조를 주동으로 학생 200명이 3월 22일 정오 고성읍 시장에 모여 독립만세를 고창한 후 시위를 전개했다.

 고성읍 만세운동은 경찰의 탄압과 주동인물의 검거로 오래 계속되지 못했으나 민중들에게 커다란 자각과 용기를 불러온 단초가 됐다.

1차 만세시위를 결의한 배만두 선생.
1차 만세시위를 결의한 배만두 선생.

 100년 전 배둔장터에 ‘대한독립만세’

 고종황제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한성에 올라갔던 최낙종 선생은 서부 경남 의거에 앞장섰던 변상태를 통해 독립선언서를 입수했다.

 최낙종 선생은 구만면으로 돌아와 허재기, 최정주, 최낙희, 최정원 등의 애국인사들과 밀회를 거듭하면서 한성의 정세를 전하고 한성의 3ㆍ1 만세운동과 같은 거사를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한문학자 이종홍에게 부탁해 독립선언서를 요약해 간략하게 작성한 후 이것을 필사해 밤에 12개 동리에 비밀리 전함과 아울러 각처에 이를 첨부했다.

 마침내 3월 30일 오후 1시경 구만면 중앙부에서 울려 나온 나팔소리가 구만면 전체로 뻗어나갔고 개천면, 마암면 동민을 중심으로 한 의거민 1천여 명이 국천 사장으로 모여들었다.

 먼저 군중 앞에 등단한 최정원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이어서 허재기 선생이 공약 3장을 지킬 것을 굳게 다짐했다.

 최낙종 선생이 선두에 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독립만세 함성은 산야를 제압하고 태극기의 물결은 넓은 들을 덮었다.

 이날은 배둔리 시장 장날이었다.

 배둔리 시장은 고성 동북 7개면과 창원 및 함안의 수개 면에 인접해 장날에는 많은 장꾼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대열은 10리 길을 걸어 서서히 배둔장으로 향했고 일본 헌병들과 경찰들이 달려와 총칼로 저지했으나 군중들은 굴하지 않고 저항했다.

 이들의 난폭에 격분한 군중은 헌병을 포위해 크게 꾸짖어 성토하고 나팔수는 헌병이 탄 말귀에 대고 나팔을 불어제쳤다.

 일본 헌병이 울분을 참지 못해 최정원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자 그는 태연히 가슴을 열어 제치고 총구를 맞이했고 일 헌병은 그의 늠름한 기백에 눌려 물러섰다.

 하루 종일 대한독립만세가 이어졌고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해산했다. 고성 최초의 성공적인 만세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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