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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 뜻 돌아보며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 뜻 돌아보며
  • 김민구
  • 승인 2019.03.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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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양산경찰서 형사과 경사
김민구 양산경찰서 형사과 경사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독립 운동가를 꼽으라면 누구일까? "3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성명서로 유명하신 백범 김구 선생이 아닐까. 필자 또한 그 분의 고귀한 생애를 존경하는 평범한 청년 중 하나이다.

 마지막까지 오직 대한의 독립만을 염려하셨던 위대한 독립 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현재의 경찰청장)이었던 그 분의 높은 뜻이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찰에 대해 짧게나마 아래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바야흐로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현재의 경찰청이라 할 수 있는 `경무국`이 설치됐고 초대 경무국장으로 백범 김구 선생이 임명되면서 임시정부 경찰이 창설됐다.

 당시 경무국의 임무는 임시정부 수호, 요인 경호, 교민사회 치안유지였는데, 당시 상해에는 독립운동가를 사칭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자가 많았다. 경무국은 이들을 색출함으로써 교민을 보호하는 임무도 맡았다.

 당시 `독립신문`에 경무국이 용감하게 활동함으로써 동포들을 협박하던 강도배들은 그 그림자를 구경하지 못하게 됐다는 기사를 통해 우리는 경무국의 활약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김구 선생이 고문으로 활동한 `의경대`에서는 질서를 유지하고 일제 스파이를 찾아내며 친일파를 엄벌에 처하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일본으로부터 임시 정부를 수호하는 활동에 노력했다. 나아가 김구 선생과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청년 경찰 부대 `경위대`도 소개한다. 임시정부 수호ㆍ요인 보호를 주 임무로 하던 경찰 부대인 경위대에는 한국광복군에서 훈련받았던 학병출신 젊은 경찰들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들은 광복 후에도 마지막까지 김구 선생의 곁을 지켰던 뜨거운 열정을 지닌 청년 경찰들이었다.

 일제 강점기 속 열악한 여건에서 임시정부 경찰은 제대로 된 역할을 다하기 힘들었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경찰이 그 뿌리를 임시정부에 두고 그 정신을 계승해야만 하는 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제1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백범 선생의 뜻이 담긴 경찰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경종(警鐘)이 되소서." 1947년 김구 선생이 우리 경찰에게 주셨던 소중하고도 무거운 한 소절이다. 위대한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경무국장 김구 선생의 이 말이야말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경찰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귀감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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