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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에 나타난 ‘농민운동’ 발상지 진주
노랫말에 나타난 ‘농민운동’ 발상지 진주
  • 이대근 기자
  • 승인 2019.03.14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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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2월 첫 봉기 삼남지방 등 전국 퍼져 157년 농민항쟁 기념식
14일 진주농민항쟁기념탑에서 진행된 제157주년 진주농민항쟁 기념식 장면.
14일 진주농민항쟁기념탑에서 진행된 제157주년 진주농민항쟁 기념식 장면.

 지금도 아이들이 흔히 부르는 이 전래 가요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5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노랫말은 1862년(철종 13년) 2월 경남 진주에서 농민항쟁을 이끈 류계춘(1815~1862)이 지었고, 당시 농민들이 농민운동을 하면서 불렀다.

 ‘이 걸이 저 걸이 갓걸이’는 농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양반들 갓을 걸어 놓는 걸이에 불가하다는 말이다.

 ‘진주 망건 또 망건’은 망건(網巾)은 당시 양반을 상징하는 것으로 진주엔 양반이 너무 많다는 뜻을 담고 있다.

 노랫말 속엔 당시 양반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깔려있다. 1862년 조선 시대 말기엔 조세제도가 문란해졌다.

 수령과 하급관리인 아전의 비리와 토호의 수탈이 심해지자 농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수탈과 착취에 맞서 처음 농민들이 봉기한 곳이 바로 진주였다.

 진주농민항쟁은 1862년 2월 14일 진주시 수곡면 덕산장에서 처음으로 봉기해 삼남 지방을 비롯한 전국으로 퍼졌다.

 진주농민항쟁기념탑은 지난 2012년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창촌삼거리에 건립됐다.

 이 기념탑에는 농민항쟁 당시 희생당한 110여명의 영령을 위로하고 농민항쟁 정신을 되새기는 조형물이 함께 있다.

 수곡장터인 이곳은 농민항쟁이 시작되기 전인 2월 6일 많은 대중이 모여 항쟁의 방향을 정하는 등 여론을 주위로 확산시켜 나간 중요한 장소다.

 ‘1862년 진주농민항쟁’의 저자인 김준형 선생은 항쟁 기념탑에 ‘당시 농민항쟁은 단순히 수탈에 대한 불만에 의해 폭발되었던 것만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당시의 사회체제를 바꾸려는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농민층의 사회운동은 더욱 거세어져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고 이후 일본 강점기에 농민운동으로 발전해 간다’고 썼다.

 이 기념탑 바로 앞에는 당시 농민항쟁 주역인 류계춘을 비롯해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기념돌이 함께 서 있다.

 당시 농민항쟁 주역이었던 류계춘 선생의 기념비는 항쟁기념탑 인근 그의 고향인 진주시 대평면 당촌리 산 중턱에 후손들에 의해 2006년 세워졌다.

 14일 진주시농민회, 진주시여성농민회, 진주시는 진주농민항쟁기념탑에서 제157주년 진주농민항쟁 기념식을 열었다.

 박갑상 진주시 농민회장은 기념사에서 “진주농민항쟁은 삼정의 문란 등 봉건 수취체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제기했으며 이후 계속된 다른 지방 농민항쟁의 자극제가 된 대표적인 항쟁으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고 고귀한 얼을 되새기자”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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