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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날`을 맞아 가치 새기기
`흙의 날`을 맞아 가치 새기기
  • 정창훈
  • 승인 2019.03.10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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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훈 대표이사
정창훈 대표이사

 흙에서 생명의 싹이 움튼다/ 흙을 가까이하라/ 나약하고 관념적인 도시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흙을 가까이해야 삶의 뿌리를 든든한 대지에 내릴 수 있다/ 흙에는 거짓이 없고/ 추월과 무질서도 없다/ 구두와 양말을 벗어 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 흙을 맨발로 감촉해 보라/ 그리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 그것은 순수한 생의 기쁨이 될 것이다. 법정스님의 `흙 가까이`라는 시의 일부다.

 매년 3월 11일은 흙의 날이다.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15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물, 공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생명고의 원천인 흙을 후손들에게 건강하게 물려줘야 한다. 환경, 식물, 생물, 물, 인간의 미래는 모두 흙 속에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흙의 날을 맞이해 흙의 공익적 가치를 되새기는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흙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바로 도시의 확대, 숲의 황폐화, 무분별한 토양의 사용과 관리, 환경오염, 과도한 목축과 기후변화 때문이다. 현시점의 토양 악화 수준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흙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한 지속 가능한 농업, 식품의 안전, 생태계 보호는 무의미한 외침이 될 것이다. 건강한 토양과 땅의 관리에 대한 홍보는 식품의 생산성을 높이고 발전된 지역 사회, 깨끗한 환경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물과 공기 그리고 흙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어쩌면 흙일지도 모른다. 흙은 흙 자신의 껍질로 덮여 있어서 들여다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수많은 생물과 미생물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그 속에서는 고도로 발전된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풀 수 없는 많은 화학적인 반응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흙에 대해 과학적으로 알려진 현상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이나 응용이 부족해서 여전히 인류에게 신비하면서도 난해한 분야로 남아 있다.

 흙은 모든 만물을 생장시킨다. 우리 조상이 누구인지 궁금하듯이 흙의 조상도 궁금하다. 조상이 누구인지 궁금하면 대개 족보와 가계를 따져본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기점으로 점점 위로 올라간다. 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인간과 달리 흙의 조상은 아래로 내려가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흙을 파 내려가다 보면 모래, 자갈, 바위, 용암이 펑 하고 터진다. 용암은 흙의 조상이다. 용암이 지구 표면으로 솟아 올라와 식은 것이 바위이다. 그 바위들이 열과 물과 압력에 의해 깨지면 자갈이 된다. 나중에 더 깨져서 모래가 되고, 그게 다시 더 깨져서 흙이 된다. 이 과정을 `풍화`라고 한다. 바위가 흙으로 풍화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물과 공기가 끼어들고, 유기물이 들어가서 드디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진짜 `흙`이 만들어진다. 바위에서 흙 1㎜가 만들어지는 데 짧게는 140년, 길게는 700년 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장마 기간 동안 비탈밭에서 1㎝ 정도의 흙이 깎인다. 짧게는 1천400년 걸쳐 만들어진 흙이 한여름에 허망하게 없어져 버리는 셈이다.

 흙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흙이 만들어 주는 양식을 먹고 그 위에 주택, 공장, 건물 등을 짓고 온갖 일을 다 하며 살다가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 흙이 된다. 지상에 쌓이는 낙엽과 공해 쓰레기 등 모든 유ㆍ무해 물질을 흙이 분해해주는 덕분으로 살 수 있다. 살처분한 가축의 사체조차 흙이 처분해주지 않으면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묻었기 때문에 흙이 당장 소화해내지 못할 뿐이지 시간이 흐르면 고맙게도 깨끗하게 분해해 줄 것이다.

 어린 시절 흙은 가족의 삶과 생명을 지켜줬다. 어머니는 깎아지르듯 위험한 산에 감자밭을 일궜다.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운데 호미로 고랑을 만들고 감자 씨앗을 묻고 키웠다. 장기간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이지만, 장대비가 내리면 일시에 흙이 씻겨 내려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잔돌도 많았지만 고무신을 신고 일을 하면 신발이 자꾸 벗겨져 감자 가마를 지고 가파른 감자밭을 내려올 때도 늘 맨발로 다녀야 했다. 화전밭이라 몇 해 동안은 특별한 거름이나 비료를 안 줘도 최소한의 감자를 수확할 수 있었다. 무엇을 심던 흙은 배신하지 않는다. 생명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잡초든 풀이든 꽃을 피우게 하고 열매가 열릴 수 있도록 한다.

 마음속에 모든 생각을 담고 있듯이, 흙 속에도 모든 것이 담겨있다. 흙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다. 출생의 비밀에서 성장 그리고 죽음까지 흙이 관장한다. 언제부터인가 신발을 신고 문명 세계에 갇혀 생활하면서 흙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제 흙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가 됐다.

 언제 흙 위를 걸어봤는가? 흙 속을 살펴봤는가? 흙과 대화를 해봤는가? 흙을 가까이해보자. 흙을 만져 보자. 냄새도 맡아보자. 맨발로 흙을 밟으며 발바닥의 감각을 느껴보자. 흙의 소중한 친구가 돼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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