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0:06 (금)
홍차가 전해주는 향긋한 여유에 흠뻑 빠졌죠
홍차가 전해주는 향긋한 여유에 흠뻑 빠졌죠
  • 어태희 기자
  • 승인 2019.02.27 2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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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전문점 김해 ‘마리봉. 포레’
잔을 정리하고 있는 김병주 사장. 모든 식기는 김 사장이 직접 백화점을 방문해 골랐다.
잔을 정리하고 있는 김병주 사장. 모든 식기는 김 사장이 직접 백화점을 방문해 골랐다.

2017년 장유계곡서 개점 고풍스러운 내부 분위기
영국ㆍ스리랑카 등 대표 분류 70여종 직접 시향 후 선택

김병주 사장 “홍차 연구 클래스 구상 중”

 홍차라면 동네의 흔한 가맹점 카페에서 한번 맛본 적이 있다. 감기에 걸려 따뜻한 음료를 먹으려고 시킨 것이다. 한입 마시고 입에 남는 떫은맛에 에스프레소와 같은 ‘어른의 맛’ 이겠거니, 시럽이 잔뜩 들어간 음료만 선호하는 내 입맛에는 맞지 않다 치부하고 이후로는 찾지 않았다.

 내 생에 두 번째로 맞이한 홍차는 ‘백작부인’이라는 고급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름에 걸맞은 앤티크한 찻잔에 적갈색의 차를 따라내자 달콤하면서도 새큼한 꽃향기가 느껴진다. 입에 머금은 ‘백작부인’은 향 그대로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 먹었던 홍차와는 달리 떫지 않다. 말린 오렌지와 레몬 껍질이 들어있다 하더니 뒷맛에 옅은 단맛도 느껴진다.

내부에 진열된 식기와 인형, 다양한 홍차통과 장식품들이 ‘마리봉. 포레’를 방문한 손님들의 눈을 기쁘게 해준다.
내부에 진열된 식기와 인형, 다양한 홍차통과 장식품들이 ‘마리봉. 포레’를 방문한 손님들의 눈을 기쁘게 해준다.

 홍차는 녹차와 같은 식물의 찻잎으로 만든다. 그러나 찻잎을 따서 효소를 죽이는 녹차 제조공정과 달리, 찻잎을 따서 방치한 뒤 잎 속의 자체 효소가 산화작용을 일으켜 검게 만들어지도록 했다. 홍차는 85% 이상 완전 발효된 차를 일컫는다. 외형은 검은빛을 띤다. 하지만 우려낸 탕색과 찻잎은 붉다. 홍차로 불리는 이유라고 한다.

 과거 흑역사(?)의 영향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홍차의 면모가 한꺼풀 한꺼풀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 관심의 단초를 제공한 곳은 김해 장유계곡에 위치한 ‘마리봉. 포레’. 경남에 몇 없는 홍차 전문점이다. 지난 2017년 1월 문을 열어 지역의 홍차 마니아들을 사로잡았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홍차는 70여 종. 스트레이트부터 사장이 직접 블렌딩(혼합)한 홍차들을 맛 볼 수 있다. ‘마리봉. 포레’는 홍차가 ‘향으로 마시는’ 음료인 만큼 시향이 중요하다고 판단, 여러 종류의 홍차를 케이스에 담아 손님에게 제공한다. 케이스를 열어 시향한 뒤 마음에 드는 홍차를 선택하면 된다.

‘마리봉. 포레’의 전경. 서양적인 내부와는 달리 단출한 기와집 앞에는 나무와 작은 연못이 있다.
‘마리봉. 포레’의 전경. 서양적인 내부와는 달리 단출한 기와집 앞에는 나무와 작은 연못이 있다.

 메뉴판에는 초심자들이 쉽게 고를 수 있도록 영국, 스리랑카, 중국, 인도, 싱가포르, 프랑스 각 국가들의 대표 차가 분류가 돼 있다.

 찻잔도 차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입이 좁은 다른 찻잔과는 달리 홍차의 잔은 향의 극대화를 위해 입이 꽃잎처럼 넓게 펴져있다.

 가격대는 7천원~9천원으로 일반적인 카페보다 비싼 편이다. 그러나 유명한 브랜드인 포트넘 앤 메이슨, 마리앙뚜아네뜨 등의 최상급 홍차 잎을 사용하며 백화점에서 직접 고른 고가의 티세트만을 사용하는 ‘마리봉. 포레’에서의 홍차 한 잔은 그만큼의 정성과 가치가 담겨있다.

김병주 사장이 손님에게 제공한 샘플통. 케이스 안에 각 홍차가 들어있어 시향을 한 뒤 원하는 홍차를 선택하면 된다.
김병주 사장이 손님에게 제공한 샘플통. 케이스 안에 각 홍차가 들어있어 시향을 한 뒤 원하는 홍차를 선택하면 된다.

 ‘마리봉. 포레’를 건강을 위해 찾는 손님도 있다.

 홍차는 해독 기능이 있고 숙취에 탁월하다. 노화 방지와 다이어트에도 좋다. 홍차의 주성분은 카테킨류인 타닌과 카페인이다. 타닌에는 항균 효능이 있어 해독성이 있으며 특히 대장균류에 대한 살균, 항균력이 뛰어나다. 티푸스, 이질균, 콜레라균, 장염 비브리오균, 대장균인 O-157 등은 카테킨류를 함유한 홍차로 사멸시킬 수 있다. 또한 홍차에 함유된 플라보노이드가 가진 항산화 효능은 노화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타민E 효능의 5배가 높다. 홍차의 카테킨은 비만의 요인인 중성 지방의 분해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행자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주저 없이 추천해도 좋다. 스페셜티 원두를 직접 로스팅해 홍차 전문점이라 커피가 맛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트린다.

 ‘마리봉. 포레’는 카페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인 분위기를 잘 살렸다. 내부를 온화하게 밝히는 고급스러운 샹들리에, 아기자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소품들과 엔티크한 가구들. ‘홍차의 나라’인 영국에서 차를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창문 밖으로는 푸른 산림이 있으니 ‘힐링’에 제격이다.

‘백작부인’이 담겨져 나온 티세트. 홍차 잔의 입이 향의 극대화를 위해 넓게 벌려져 있다.
‘백작부인’이 담겨져 나온 티세트. 홍차 잔의 입이 향의 극대화를 위해 넓게 벌려져 있다.

 ‘마리봉. 포레’의 김병주 사장은 손님이 “홍차가 이렇게 맛있는 음료인지 몰랐다”고 말해 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홍차는 따뜻한 물에 오래 우려내는 다른 차와는 달리 높은 온도에서 잠시 우려내야 합니다. 시간을 넘기면 떫은맛이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모르고 일반 녹차처럼 끓여내요. 거기다 일반인들이 직접 수입하기는 부담스러운 고급 찻잎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평소 먹던 것과는 달리 더 깊은 맛이 난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홍차는 ‘로미오와 줄리엣’, ‘산타마리아’, ‘백작부인’ 이다. 개성 있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홍차라면 ‘얼그레이’나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밖에 몰라 사장님이 작명센스가 뛰어나겠거니 했는데 원래 있는 이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유서 깊은 홍차의 이름은 다 유래가 있다. 대표적으로 ‘얼그레이’만 하더라도 그레이라는 백작이 영국 왕실에 의뢰를 받아 중국에서 홍차 제다기술을 배워 만든 홍차다.

 홍차의 이런 저런 유래를 설명하는 김 사장은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홍차의 매력에 흠뻑 빠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빠른 시일 내에 홍차를 연구하는 클래스를 따로 만들어 그 매력을 전파할 계획이다.

 유럽의 홍차는 우연이 준 선물이라고 한다. 중국을 통해 차를 처음 알게 된 영국은 차를 재배하기에 기후가 맞지 않았다. 자체적인 수급이 필요했던 영국은 기후가 알맞은 식민지인 인도와 스리랑카에 차를 재배해 가져왔는데 습한 기후와 강한 햇빛으로 차가 발효돼버렸다. 이 발효된 차를 버리기 아까워서 우려냈더니 맛이 좋아 여러 연구 끝에 지금의 홍차가 된 것이다.

 “중국에서 가져온 차가 영국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국인들이 그 맛과 향에 반한 이유도 있지만 차를 마시며 누리는 여유로운 모습을 닮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봅니다. ‘빨리빨리’ 문화에 젖은 우리나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홍차를 통해 이 여유를 누렸으면 해요. 사실 행복은 큰 것에서 오는 게 아니거든요.”

 김해시 대청계곡길 234(김해시 대청동 535)/전화 055-312-2222/영업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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