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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일상
편의점 일상
  • 김민영
  • 승인 2019.02.26 0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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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김해시민
김민영 김해시민

저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편의점에서 일을 합니다.

 저희 편의점에는 커피를 판매합니다. 여러 종류의 커피가 있지만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커피는 자판기 커피이고 다른 편의점에서는 살 수 없는 스틱 커피를 낱개로 판매도 합니다. 이 스틱 커피와 관련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희 편의점에는 고정으로 오시는 단골손님들이 있습니다. 택시기사님들과 매일 막걸리를 사러 오시는 아저씨 세 분, 그리고 ‘토토’라고 하는 스포츠 복권을 하는 남자 손님들이 그분들입니다. 택시기사님들은 주로 자판기 커피를 마십니다. 자판기 커피는 한잔에 300원이고 스틱 커피는 400원입니다. 커피자판기가 고장 난 날에는 스틱 커피를 자판기 커피와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매일 막걸리를 사러 오시는 아저씨 세 분 중에 한 분은 저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앞에서는 참 점잖으십니다. 물론 한번은 바지에다가 응가를 하시고, 삼십분 마다 막걸리를 사러 오시는 바람에 제가 그만 죽을 지경이었지만 말이지요. 또 한 분은 잊어버릴만 하면 외상으로 막걸리를 달라고 하십니다. 처음에는 제 돈으로 막걸리를 사드리기도 했어요. 술은 먹고 싶은데 막상 돈이 없어서 술을 사지 못하는 아저씨 마음을 알 것 같아 그랬지요.

 매일 막걸리를 사러 오시는 아저씨 세 분 중 한 아저씨, 듣기 편하게 세 번째 아저씨라고 부르겠습니다. 막걸리를 사러 오시는 아저씨 중 연세가 가장 많으시고 유일하게 저를 보면 웃어주십니다. 아저씨는 스틱 커피를 참 좋아하십니다. 돈이 부족하면 제게 100원을 빌려 스틱 커피를 사드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는 돈이 없다며 제게 스틱 커피를 한잔 사달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그날 이후 아저씨가 제게 계속해서 스틱 커피를 사달라고 하십니다. 나중에는 그런 말도 없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셔서 스틱 커피를 타서 나가십니다. 내버려뒀지요. 저는 그냥 나누어 마신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아저씨가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똑같은 행위를 한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늦게 알았습니다. 아저씨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스틱 커피를 사달라고 했고, 안된다고 해도 그냥 타서 나가셨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저씨에게 스틱 커피를 사드리지 않았고 몇 번의 시비가 있었지만 아저씨도 더는 제게 스틱 커피를 사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스틱 커피가 한잔에 400원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토토’라고 하는 스포츠 복권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서비스지요. 미용실에서 무료로 스틱 커피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즉, 복권에 지불하는 돈의 일부가 스틱 커피값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복권을 하지 않는 날에도 몇몇 분은 편의점에 들어오셔서 스틱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을 내지 않고 말이지요. 편의점에 들어오자마자 스틱 커피를 타서 복권을 할 것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시다가 그냥 나가버리십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앉아 있는 분도 있습니다. 여기가 편의점인지 휴게소인지 구분이 되지 않나 봅니다. 살다 보니 별의별 사람 다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주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시면 안 돼요!”

 복권을 하는 사람들 중에 사장님의 후배가 있습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목소리가 가장 큰 사람입니다. 매일 편의점에 오셔서 삼십분에서 한 시간씩 앉아 있습니다. 복권도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점심시간을 편의점에서 보내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 일찍 들어가기는 싫고 말이지요. 매일 혼자 다니던 사장님의 후배가 직장 동료와 함께 편의점에 왔습니다. 그날은 스틱 커피가 아닌 다른 커피를 돈을 내고 마십니다. 함께 온 동료는 스틱 커피를 마시겠다고 합니다. 저는 사장님의 후배에게 웃으며 계산하라 했지요. 그분이 말합니다. “그건 돈 안 내도 돼.” 일이초 정도 고민했을까요? 저는 사장님의 후배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시면 안 돼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선 사장님의 후배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이때까지 그냥 마셨는데?” 복권을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무료로 제공되는 거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사장님의 후배는 저에게 온갖 짜증을 내더니 결국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신경도 안 썼지요. 물건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져가려는 손님에게 물건값을 받아내는 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할 일이니까요.

 택시기사님들 중 한 분이 자판기 커피를 마시려고 10원짜리 서른 개를 100원짜리 세 개로 바꿔 달라 하십니다. 그러고는 미안했던지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10원짜리도 돈이잖아?”

 조용히 앉아 타인의 마음 상태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사장님 후배의 마음 상태에 대해, 친구와 함께 스틱 커피를 한 잔씩 타 마시면서 편의점에 앉아 이야기만 하다가 가버리는 중년의 단골손님, 십원짜리 동전을 양손 가득 들고 온 택시 기사님의 마음 상태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입니다. 2년 넘게 편의점에서 일을 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 저를 보지요. “나도 누군가에게는 저런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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