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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행적 재주목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오 ’행적 재주목
  • 장세권 기자
  • 승인 2019.02.24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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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출신 약산 여동생 별세 오빠 항일투쟁 알리기 나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장의 생가터에 들어선 밀양 의열기념관 전경.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장의 생가터에 들어선 밀양 의열기념관 전경.

임정 국무위원 등 지낸 인물
해방 후 월북 유공자 안 돼
사회주의 전력, 형제자매 고초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장의 항일 투쟁을 적극 알려온 그의 막냇동생 학봉 씨(여)가 24일 오전 3시 향년 90세로 별세하면서 약산의 행적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약산 김원봉은 일제에 맞서 무장항쟁을 이끈 대표적 인물로 지난 2015년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2016년 ‘밀정’에서 이병헌이 연기하면서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1898년 밀양에서 출생한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 일제 수탈 기관 파괴와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이후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다.

 하지만 1948년 월북한 이후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고, 같은 해 9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이후에도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지만, 1958년 김일성의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장의 막냇동생 김학봉 씨. 연합뉴스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장의 막냇동생 김학봉 씨. 연합뉴스

약산은 11남매(9남 2녀) 가운데 첫째였으며, 고인은 약산의 막내 피붙이다. 약산과 34년 터울인 고인은 약산이 1948년 월북하기 직전 두 차례 본 것이 만남의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성향이면서 월북을 한 약산의 전력으로 고인을 포함한 약산의 형제자매들은 경찰에 붙잡히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고인은 2001년 북한에 있을 약산의 가족을 만나고 싶다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고, 지난 2005년에는 서훈을 신청하는 등 약산 알리기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약산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국가보훈처 심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서훈 신청은 번번이 좌절됐다.

 의열단을 조직한 약산이 독립운동에 앞장선 것은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월북해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내 현행 기준으로는 독립유공자 지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약산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면 북한 정권 출범에 관여한 인물도 유공자로 선정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는 탓에 보훈처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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