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9:55 (목)
기해년에 불러보는 상춘곡
기해년에 불러보는 상춘곡
  • 김숙현
  • 승인 2019.02.20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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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현 SAS영재아카데미 원장, 김해시 학원연합회 감사
김숙현 SAS영재아카데미 원장, 김해시 학원연합회 감사

조선 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정극인(1401태종1년-1481성종12년)은 봄 경치를 완상하는 노래 상춘곡(賞春曲)을 가사형식으로 남겼다. 그는 만년(晩年)에 고향인 전북 태안에 머물면서 그곳의 봄 경치를 읊고 자연 속에서 한가하게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다. 조선의 유교 사상을 새기던 학자이며 양반이고, 남자라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가을도 아닌 봄을 이렇게 노래한 점에 대해 경이로울 정도이며 시를 통해 공감대를 잘 형성하여 정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짐작이 든다.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湛c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 예 풍월주인(風月主人) 되어셔라.

안빈낙도하는 그의 삶과 자연과 일부가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서사 부분을 보면 영락없는 선비요 양반이라 할 수 있다.

엇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 석양리(夕陽裏)에 퓌여 잇고 녹양방초(綠楊芳草)?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긴 겨울 끝에 봄이 돌아왔고 봉숭아꽃 살구꽃이 석양 속에 피어 있는 그림을 놓치지 않은 섬세함에 놀랍다. 봄비에 버드나무 새싹과 풀잎이 푸르게 돋아나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의 마음엔 분명 작은 생명도 의식하는 자애로움이 숨어있는 듯하다. 봄의 경치를 조물주가 칼로 재단한 것 같다고 찬양하고 있는 그는 조금은 과장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진정 멋을 아는 고품격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다 /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 마다 교태(嬌態) 로다 /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 다?소냐

조물주의 뛰어난 솜씨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고 수풀의 새는 봄의 흥취를 못 이겨 아양을 떠니 아름다운 자연 속에 몰입한 자신은 자연과 하나 되어 숲속에 우는 새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더 이상의 극찬이 있을까?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구경 가쟈스라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來日)하새 아?에 채산(採山) 하고, 나조? 조수(釣水)?새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는 이 삶의 만족감으로 이웃에게 권하는 정(情)도 표현하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보리밭이 녹아 떠들썩 뿌리가 들렸을텐데 이 양반은 그 중요한 일을 뒤로하고 봄 구경 가자고 한다. 뿌리 밟기는 내일로 미루라니 아뿔사, 이 대목에서 어쩔 수 없는 양반이란 생각이 스친다.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 으로 밧타 노코 /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화풍(和風)이 건듯부러 녹수(綠水)?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상춘곡의 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대목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구절이며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갓 익은 술을 칡으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 놓고 꽃을 띄워 마시니 맑은 향기가 잔에 지고 떨어지는 꽃잎은 옷에 진다고 하니 이 얼마나 멋스럽고 아름답고 소박한가.

단종의 폐위를 겪으며 낙향한 그가 마음을 비우고 상처 난 자리를 치유하며 자연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자연은 매일매일 다르게 펼쳐져 탐색의 대상이자 새로운 발견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조물주의 작품인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회한에 젖기도 했을 것이고 또, 어쩌면 세상의 비극과 애환에 대한 역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이맘때쯤 상춘곡을 감상하지만,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조선의 선비가 봄을 맞으며 붓을 든 모습을 소환해보며 정월 대보름을 기점으로 확실히 느껴지는 봄을 세우(細雨)로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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