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00:40 (토)
비도덕적 사회에서 현재 역사란
비도덕적 사회에서 현재 역사란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2.14 23:2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개인이 집단이라는 괴물에 속해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단체에 조종당하는 모양새다.

옳고 그름은 없고 진영 논리만 있다고 하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어느 굽이에서 뒤틀려 샛강으로 흐를 수 있다. 샛강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다시 본류에 합쳐지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실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진실에 의문을 달 때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곤곤한 역사의 외침을 어느 누가 다 가릴 수 있겠는가. 시대를 달구는 잡다한 소리도 결국은 진실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묻히게 된다. 주류의 역사가 진실이라는 배경을 깔고 오늘을 사는 게 우리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바른 역사가 뿌리내리기 전에 겪는 엄청난 혼란 속에 있다. ‘사회 정의가 무언가’라고 묻기도 민망할 뿐 아니라 ‘사회정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머리가 아찔할 정도다.

 양승태 사법 농단이 불러온 법 정의의 실종은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단순한 생각으로, 특정 사안을 두고 선고에 앞서 법의 잣대를 뒤에 숨기고 입맛대로 형량을 주물렀다면 심각하다. 재판거래의 구체적인 사례가 불거져 할말이 없게 돼 사법부는 부끄러운 얼굴을 오랫동안 달고 다닐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사법부를 불신한다면 국가에 위기가 닥치게 된다. 정의당은 권순일 대법관을 포함한 자체 사법 농단 법관 탄핵 명단을 발표했다. 정의당은 사법 농단을 단죄하자며 먼저 치고 나갔다. 사법부가 이 지경이 된 상태에 앞서 김경수 경남지사 법정구속돼 사법부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사법 농단 연루 판사를 그대로 놔둬 죄 없는 김경수 지사가 법정구속까지 됐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 지사 법정구속에 보수 단체는 지사직 사퇴를 요구하고 진보 단체는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날카로운 대립 때문에 서로를 밀쳐내지 않고는 서기가 힘든 상황이다.

 김 지사는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조작을 벌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김 지사의 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김 지사의 범죄 혐의는 숨어버리고 논리만 남아서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또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사법부가 불신받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내린 선고에 토를 달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법부의 선고를 두고 개인 의견을 내는 데까지 한정해야 한다. 김 지사 구속을 두고 진보와 보수의 단체가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기 쪽 주장을 내세우는 건 자유지만 행여 힘을 모아 진실을 덮으려 하거나 다음 선고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행위라면 통탄할 일이다.

 개인은 도덕적인 사람이라 해도 사회 안에서 한 집단에 속하면 집단 이기주의로 변할 개연성이 높다. 개인은 죽고 단체를 살리기 위해 개인이 손을 잡아 집단을 만들면 도덕성을 잃는다. 라인홀드 니버가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들춰보면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민족적ㆍ계층적 충동이나 집단적 이기심을 생생히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니버의 예리한 통찰력이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먹히고 있다. 개인이 집단이라는 괴물에 속해 자기 목소리를 죽이고 단체에 조종당하는 모양새다. 옳고 그름은 없고 진영 논리만 있다고 하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목소리를 상대보다 높여 현재의 역사를 샛길로 몰고 가려는 사람은 역사의 죄인이다. 역사는 역사 자체가 진리를 낳게 하지만 현 역사가 나중에 제대로 쓰일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언론학에서 자주 다루는 ‘어젠다 설정 이론’은 자칫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이 된다. 한쪽으로 너무 기운 언론이 어젠다를 의도적으로 내세우면 대중은 그 어젠다에 현혹돼 사실이 아닌 걸 사실로 받아드린다. 지금 진보 보수가 목소리를 크게 내뿜는 건 대중의 마음을 뺏기 위한 작태라고 볼 수도 있다. 개인의 양심을 무뎌지게 하고 집단의 광기를 덧씌우는 비도덕적 사회가 한창 힘을 받고 있다. 참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사법부의 생명인 정의가 쓰레기통에서 뒹구는 현실에서 김 지사의 수감을 두고 정의보다는 집단의 비도덕성에서 답을 찾으려는 진보와 보수는 차분히 역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긴 역사가 던져준 교훈에서 ‘승자 독식’보다는 ‘정의 우선’에 무게가 실리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할 지경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현오 2019-03-05 17:51:40
많은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