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진전ㆍ진북ㆍ진동 주민 7천명 日 헌병대 맞서 “독립만세”
마산 진전ㆍ진북ㆍ진동 주민 7천명 日 헌병대 맞서 “독립만세”
  • 이병영 기자
  • 승인 2019.02.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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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3 삼진의거’ 재조명 1919년 3월 28일ㆍ4월 3일 두 차례
진동ㆍ진북ㆍ진전면서 일어난 연합대 의거, 김수동ㆍ변갑섭ㆍ변상복 등 8명 순국
‘팔의사 창의탑’ 조성 애국 넋 기려 진북면 자산리 기념관 건립 착수

4ㆍ3의거 재현행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학생들.
4ㆍ3의거 재현행사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학생들.

 지난 1919년 3월 1일 일제의 탄압에 항거해 전국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3ㆍ1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우리 지역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 진북, 진전면 등 삼진지역에서도 100년 전 4ㆍ3의거가 시작됐다. 4ㆍ3 삼진의거는 3ㆍ1운동이 한창 불붙고 있는 시점에서 1919년 3월 28일과 4월 3일 두차례에 걸쳐 진동, 진북, 진전면 등 3개지역에서 일으킨 연합대 의거다. 4ㆍ3삼진의거는 삼진독립의거라 칭하고 있으며, 수원제암리(水原堤岩里)의거, 선천읍(宣川邑)의거, 수안(遂安)의거와 함께 4대의거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올해는 3ㆍ1독립운동이 전개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4ㆍ3의거의 근원지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 진북, 진전면 지역에 상존해 있는 당시의 발자취와 흔적을 찾아보면서 4ㆍ3의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창원시와 경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자료와 향토사학자이자 창원시 근ㆍ현대사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독립운동분과위원장인 김익권(전 마산시의원)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4ㆍ3의거에 대한 생생한 구전(口傳)과 기록을 참조해 특집기사를 싣는다. <편집자 주>

 ◇4ㆍ3의거 유례

 4ㆍ3의거는 지난 1919년 3월 28일에 일어난 진동면 고현 의거를 뒤이은 만세 시위다. ‘삼진의거’는 1919년 3월 28일, 4월 3일 등 두 차례에 걸쳐 마산의 진전, 진북, 진동(鎭東面, 鎭北面, 鎭田面))3개의 면이 연합해 일어났다.

 당시 변씨 일족인 변상태(卞相泰)의 주도하에 변상헌(卞相憲), 권영대(權寧大), 권태선(權泰璿), 권태용(權泰容), 김수동(金守東), 김영종(金永鍾), 구수서(具守書), 변상섭(卞相攝), 변상술(卞相述), 변우범(卞又範), 변상복(卞相福), 변종열(卞鍾悅), 황태익(黃泰益) 등이 은밀히 일신재(日新齋)에서 회합해 태극기와 격문 “曰我同胞 有進無退”를 찍어내고, 중앙에서 전해진 독립선언문을 나눠주며, 3개 면에 지령해 의거를 일으켰다.

 지난 1919년 4월 3일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주민들이 연합해 의거한 4ㆍ3의거는 7천여 명이 진동면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본군 헌병대와 혈전을 일으킨 독립의거였다.

 이를 4ㆍ3삼진독립의거라 칭하며 수원제암리(水原堤岩里)의거, 선천읍(宣川邑)의거, 수안(遂安)의거와 함게 4대의거 중 하나로서 8명의 사망자와 22명의 부상자를 낸 피비린내 나는 혈전의 대의거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현 의거에서 검거되지 않은 변상태, 변상헌, 권영대, 권태용 등이 비밀리에 삼진 의거를 도모했다. 진동면을 비롯한 진전면과 진북면 일대의 지도자들이 대거 가담했다. 거사일을 음력 삼월 삼짇날인 4월 3일로 결정하고 주동자들은 서당에 모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서당을 중심으로 한 유교 세력과 개화된 민족주의 지도자들을 규합했다.

 4월 3일 거사일에 진전면 양촌 마을 양촌 냇가 둑에 대형 태극기를 내걸었다. 오전 9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군중 수가 2천명을 넘었으며 점차 늘어났다.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진동 읍내 장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로 진입했다.

 일제의 당시 기록에는 주동 인물들이 ‘십인장(十人長)’, ‘이십인장(二十人長)’이라고 쓴 흰 수건을 머리에 감고 시위대열을 이끌고 있었던 것으로 봐 다른 지역의 시위와 달리 매우 조직적이었던 의거였다고 추정된다. 이것은 10명 혹은 20명씩 조직을 만들어 치밀하게 의거 현장을 주도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는 1919년 일어난 3ㆍ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마산지역(창원시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시위 군중들이 진동 읍내 장터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사동리(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사동교 다릿목에서 일본군과 대치했는데 일본군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쏴 당시 23세인 김수동이 죽었으며, 이어 변갑섭이 총에 맞아 숨을 거뒀다. 이날 오후 3시 마산의 중포병 대대 병력이 증파됐으며, 잔학하게 진압했다.

 일본군의 무력 진압으로 시위는 끝이 났고, 부상자는 이름이 밝혀진 사람만 집계한 것으로 봐 실제로는 그 이상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잃은 8명은 김수동, 변갑섭, 변상복, 김영환, 고앙주, 이기봉, 김호현, 홍두익 등이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 경찰에 검거돼 징역 2년형을 받은 사람이 변상태, 권영대, 권태용 등이며 징역 1년형을 받은 사람은 변상섭, 변상술, 구수서, 변상헌, 김영종, 변우범 등이었다. 이후 지난 1963년 10월께 삼진면민들은 순국한 팔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237번지 고현 마을 입구에 팔의사 창의탑을 세웠다.

팔의사의 넋을 기리는 팔의사 창의탑.
팔의사의 넋을 기리는 팔의사 창의탑.

◇팔의사 창의탑 이력

 “삼진지역 주민들이 팔의사의 애국, 애족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뜻있는 분들이 성금으로 지난 1963년 11월 5일 팔의사 창의탑을 완성해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기존 낙후된 시설과 주변경관의 재정비가 시급해 2013년 1월부터 공사를 시공해 이렇게 완공을 보게 돼 이제 팔의사 창의탑의 숭고한 정신을 전달하는 장소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라고 창의탑 비문에 적혀 있다.

 ◇팔의사 묘역

 팔의사 묘역은 삼진의거의 발상지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양촌숲 옆의 바른 양지쪽에 설치돼 있다.

 이 묘역은 3ㆍ1독립운동시 삼진의거 발상지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양촌숲 옆의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3ㆍ1독립항쟁사에 찬연히 빛나는 불멸의 삼진의거 순국 팔의사가 잠들어 있는 민족의 성지다.

 1919년 기미년(己未年) 3ㆍ1독립운동, 4ㆍ3삼진의거시 진동면 사동교에서 무장한 일본군 헌병대의 총칼에 맞아 쓰러지면서 항쟁한 혈전에서 순국한 진전면의 동산리 김수동, 양촌리 변갑섭, 일암리 변상복, 동산리 김영환, 일암리 고묘주, 봉곡리 이기봉, 곡안리 김호현, 오서리 홍두익 등 팔의사가 이곳에서 영면하고 있다. 이 바로 아래에 삼진의거의 지도자인 변상태 선생의 묘비가 있고, 변상용의사와 변상헌 의사의 비가 서 있다.

 ◇팔의사 애국지사 사당

 팔의사의 4ㆍ3독립만세 삼진의거 애국지사 사당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임곡삼거리 오른쪽에 건립돼 있다.

 이 사당에는 팔의사들이 독립운동 당시의 과정과 모습을 재현해 이곳을 방문하는 지역민들은 물론 학생들에게 우리고장의 독립운동에 대한 산 교육장이 되면서 팔의사의 숭고한 애국, 애족정신을 일깨워주면서 추모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사당의 위치는 안으로 엄숙한 사당과 그 앞으로 내삼문, 전시관, 관리동 등이 있다.

 사당에는 순곡한 팔의사의 위패들이 정중히 모셔져 있고, 전시관에는 태극기, 역사적 기록물 등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태극기 견문 및 독립선언서 제작 등을 하는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놨다.

 한편, 이 지역의 삼진청년연합회측은 격년제로 팔의사 창의탑 앞에서 그 날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며, 4월 2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행사 당일 3일에는 마산삼진고등학교와 삼진중학교 학생 수백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창의탑 헌화 및 묵념, 기념행사, 출정식, 만세시위 재현행사를 고현교위와 진북천에서 열고 있다.

 이 행사는 지난 2016년 4월 3일 재현했으며, 앞으로 격년제로 재현될 예정에 있어 학생들은 물론 인근지역 주민들은 그 당시 4ㆍ3의거에 대한 생생한 독립운동의 재현모습을 직접 구경할 수 있다.

불멸의 삼진의거 순국 팔의사가 잠들어 있는 묘역.
불멸의 삼진의거 순국 팔의사가 잠들어 있는 묘역.

◇4ㆍ3의거 발상지 진전면 성구사

 성구사는 4ㆍ3의거 당시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만들었던 역사적인 장소다.

 ◇팔의사 추모비석 있는 진동면 사동리

 팔의사의 숭고한 애국, 애족의 독립정신을 추모하는 비석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 국도14호선 도로변에 설치돼 있어 독립운동의 본거지인 발자취를 안겨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1919년 기미년 3ㆍ1독립운동이 전개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창원시는 신년참배를 시작으로 기미년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4ㆍ3의거 재현행사, 독립만세운동지로 떠나는 역사기행, 독립운동사 책자발간 등을 준비했다. 특히 진북면 지산리 일원에 4ㆍ3삼진의거 기념관 건립사업도 착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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