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1:34 (금)
백 년 봄을 딛으리라
백 년 봄을 딛으리라
  • 하성자
  • 승인 2019.02.1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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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봄이 오고 있다. 민족이 봉기했던 그 날을 지나쳐 어언 백 년에 닿는 봄이다. 그동안 경술국치에 처해 비분강개했던 백성들, 그 암울했던 3월을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고, 망국민으로 태어나 민족말살정책 아래 설움 받고 해방 뒤 6ㆍ25란 쓰라림을 겪었던 이들도 고인이 됐거나 노령 세대가 됐다. 이후 세대인 나는 일본 압제의 잔재와 전쟁의 상흔을 어렴풋이 간접경험한 축에 속한다. 오늘날 청년들은 그 고난의 뼈저림을 얼마만큼 체감할까 생각하며 백범일지를 펼쳤다.

 백범은 19살 때 동학운동의 접주로 활동했다. 조직이 와해되자 청계동에서 동학 토벌군을 지휘했던 안태훈 진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그곳에서 정신적 성장을 하게 되는데 이때 안중근, 공근 형제를 만난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면서 임시정부의 주석이 돼 대한민국이란 국명으로 세계 각국에 대외적 존재를 표방했고 주권회복의 기치를 세워 해방 이후 정부에 이양시킬 때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낸 지도자들 중 대표적 인물이다.

 백범은 책 서두에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자신의 치부부터 피력했다. 본인이 역적 김자점의 후손이며 상놈으로 멸시받았던 이야기, 도둑질한 이야기들이다. 백범일지가 발간됐던 1947년 당시는 봉건적 사상과 생활의 일면이 강했던 시기이다. 백범은 민망한 성장기도 담대히 밝혔는데, 외모에 대한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다가 자신의 관상이 한 군데도 귀격(貴格), 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온몸에 천격(賤格), 빈격(貧格), 흉격(凶格)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오히려 그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만고천하에 흥해 보지 못한 나라가 없고 망해 보지 못한 나라가 없지만 나라가 망하는데도 신성하게 망하는 것과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조정 대관들이 외세에 영합하려는 사상만 가지고 나약하니 장차 백성과 주권을 모두 빼앗기게 될 우리나라는 더럽게 망하게 되겠다"는 청계동 유학자 고능선(高能善) 선생 말을 듣고 백범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한다.

 백범은 안악 양산학교에서 후학을 길러내는 동안 인근 양반 상놈을 다 모아 훈련시키며 반상이 구별 없다 역설하고 평등을 실행했는데, 이는 어머니의 성정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어머님은 일찍이 노복은 물론이고, 팔십 평생 `고용` 두 글자와도 상관이 없으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손수 옷을 꿰매고 밥을 짓고, 일생 동안 다른 사람의 손으로 당신의 일을 시켜보지 않으신 것도 특이하다고 하겠다." <백범일지 인용>

 곽낙원 여사의 장례식이 끝난 얼마 뒤 광복군이 창설돼 재외 동포와 국내에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주게 됐다. 숱한 활동과 노력 끝에 마침내 해방되고 김구 선생은 서울로 돌아온다. 임정의 모든 것을 정리해 해방 정부에 이양해 주고 이봉창 등 3열사의 유골을 모셔와 맨 앞에 안중근 의사의 자리를 비워놓고 안장한다. 이후 삼남 지방을 순회하는 등 활동을 했고 안두희에 피습당해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유명을 달리했다.

 "나는 오늘날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ㆍ경제상ㆍ사회상으로 불평등ㆍ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ㆍ알력ㆍ침략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중략)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뤄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뤄지고 어찌하랴!"<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

 1947년에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쓰고 선생은 같은 해 6월에 유명을 달리했다. 평범한 대중이 이끄는 사회의 물결에서 물길을 내는 이들이 나타나고 때로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백범은 민족 유사 이래로 가장 치욕적인 상황을 맞은 망국의 백성에서 앞장 서 독립을 위한 물꼬를 잡고 열어 내는 길을 걸었다. 백범(白凡)이란 아호처럼 평등과 낮춤을 평생 실천한 김구 선생을 나는 존경한다.

 근대적 민중운동의 효시인 동학운동 이후 조직적 민중봉기였던 3ㆍ1 만세운동은 경술국치에 대항한 민족의 자발적이고 거국적인 애국 운동이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일본은 진정한 반성이 아니라 오히려 아베를 필두로 한 심상치 않은 우경화의 조짐으로 동북아 균형과 한반도 평화무드에 냉기류로 작용할 위험 소지를 보이고 있다. G7 강국에 속하는 일본은 우리 역사 전후로 간과할 수 없는 이웃 국가이다. 세계의 급물살에 대비해 우리 국력이 더 굳건해야 하지 않겠는가. 선구자가 원했던 진정한 `대한독립`, `나의 소원`을 실현하는 과정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음에 나 또한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부심으로, 평범한 내 하루지만 역사 위에 업적이 될 길일 테니, 어깨 펴고 힘차게 오늘을 뻗쳐 만세 보전할 역사 일궈 낼 백 년 봄을 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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