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호호 명절 신 풍속도
가가호호 명절 신 풍속도
  • 김숙현
  • 승인 2019.02.0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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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현 SAS영재아카데미 원장 김해시 학원연합회 감사
김숙현 SAS영재아카데미 원장 김해시 학원연합회 감사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식상해진 느낌은 우리나라 명절 풍속도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높아진 여성의 학력과 사회 참여도를 고려한다면 아직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지만 몇 년 사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의식을 달리하는 데는 앞서가며 비판적 시각으로 세상을 이끈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또한,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행문화가 번지고 그로 인해 명절의 연휴가 여행의 적기가 돼 명절을 집에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의 가치가 변화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제사음식을 꼭 자손의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변화가 일었다. 손이 많이 가는 제사음식을 맞춤이나 마트에서 구매하는 사례가 많아졌는데 예전과 달리 맛 또한 가정에서 손수 만든 것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유교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안동이 본가였던 어느 가문에 시집을 와, 26년간 맏며느리로 살면서 명절에 친정에 갈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가 본 일이 없다. 며느리를 본 시어머님이 찾아오는 손님을 치도록 외면하고 친정으로 가버릴 수 없어 ‘3년만’이라고 생각했으나 동서 둘을 보고도 변함없이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 부분에 대해 개선하려는 의지는 누구도 없었다. 스스로도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지나친 책임감 때문에 기꺼이 해 왔고 긴 세월 불만 없이 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우리 집에도 새바람이 불었다.

 온 가족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인다면 모든 경비를 당신이 대겠다고 선언하시며 호랑이 같던 아버님이 제주도 여행을 제안하셨고 4남매 열다섯 명의 가족과 시부모님까지 열일곱 명의 대가족 여행이 진행돼 뜻깊은 추억을 만들었었다. 이번 설 연휴도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말씀하셔서 다녀왔다. 물론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큰 경비를 모두 지원하셨고 될 수 있는 한 당신의 후손들이 한자리에 다 모일 수 있도록 유도하셨다. 당신의 이름을 건 윷놀이를 하도록 해 삼대가 둘러앉아 목청 높여 윷 말을 서고 상금을 타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했다. ‘부부대항전’과 ‘손주들 대항전’이 따로 열리고 지붕이 떠나도록 ‘도야~’, ‘모야~’를 외치며 웃고 바닥을 두드리며 가족이 함께했다.

 군무원으로 33년을 공직생활을 하시며 원칙대로만 살아오신 아버님은 당신의 삶도 철저하게 관리하셨지만 가족에게도 엄격하고 인색하신 분이셨었다. 원칙에 벗어난 일은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철두철미한 분이셨다. 유년기부터 부산 유학을 했지만, 안동 이웃에서 태어나 고향 색이 같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위계질서에 대한 확고부동한 생각이 더해져 아버님의 가족으로서 또는 며느리로서 두렵고 힘든 일도 많았었다.

 초등학력이 전부였던 아버님이 정년퇴직 이후 2001학년도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 최고령자로 응시하셨다. 부산에 있는 외국어 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해 졸업하시는 동안 중국의 상해와 하얼빈에 있는 대학 두 곳을 유학하실 정도로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셨었다. 우리 나이로 70세 이후 졸업하신 뒤, 지금까지 중국어와 명심보감을 강의하고 계신다. 우러러 존경스럽고 귀감이 되는 미담이지만 가족이기에 남다른 고충도 있었다.

 새로운 교육을 받으시는 동안 오랜 세월 당신을 지배했던 고정관념이 서서히 바뀌고 변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강의를 하시며 다양한 계층의 수강자를 만나고 미디어에 노출돼 여러 가지 사례를 접하시며 세상의 흐름을 인지하셨을 것이다. 중국어를 가르치실 때는 초등학생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시고 명심보감을 강의하실 때는 지적 수준과 연세가 높은 분들을 상대로 하시며 많은 경험을 하신 결과 당신도 어느새 바뀌어 가고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용기와 결단을 내리신 것이다.

 세월의 변화에 조금은 더디 따라가지만, 당신이 살아오신 대 원칙하에서 당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당신만의 새로운 명절 풍속도를 만들어가시는 아버님을 구심점으로 우리 가족은 보기 드문 가족애를 확인하고 그것을 굳건히 지켜가며 몸소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만의 방식인 신 가족 풍속도를 그린 것이고 가히 자부할 만하다. 그 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았고, 자식들에게 산 교육이 됐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족이 오랜만에 모두 모여 각자의 휴대폰을 들고 ‘같이 따로’가 아닌 ‘함께’ 할 수 있으려면 가가호호(家家戶戶)에 맞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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