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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소고
설 명절 소고
  • 이광수
  • 승인 2019.02.07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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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어버이 살아 신제 섬길 일랑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이조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이자 서인의 영수였던 송강 정철의 시조다. 어릴 때 국어 시간에 애송했던 시조지만 지금 누가 이런 시조를 읊조리겠는가. 기해년 구정 설 명절을 맞아 3천만 명의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 지난 2일부터 시작된 귀성행렬은 비행기, 기차, 고속버스, 자가용 등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예년에 비해 귀성으로 인한 교통체증은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다. 탈 것들이 많아지고 분산 이동한 이유도 있겠지만, 긴 연휴를 외국에서 보내려는 해외여행객 수가 늘어난 탓도 있을 것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농촌 엑소더스로 시골을 찾는 귀성 행렬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군 지역 마을에는 늙은 어른들만 고향산천을 지키고 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누가 고향을 지키려고 낙향하겠는가. 현대인의 도시 지향적 삶은 더욱 가속화되고, 옛날 같은 명절 풍속도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못 입고 배고팠던 보릿고개 시절엔 한해 두 번 오는 설. 추석 명절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그때가 돼야 비로소 새 옷 한 벌 얻어 입고, 평소 먹어 보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을 한 달여 앞두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그러나 입성과 먹성이 넘쳐나는 지금 신세대에겐 명절이 그리 반갑지 않다. 오히려 서양에서 전래한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를 우리 고유 명절보다 더 기다리고 즐긴다.

 핵가족화의 진전에 따라 가족 개념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자식에게 부모는 자신들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한 근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족관계의 구성과 해체, 그리고 재구성과 재해체가 보편화 돼 가는 세상이 됐다. 신혼 커플의 40%(서양 50%)가 이혼하는 시대에 전통적 가족관을 고집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고, 다시 다른 만남으로 새 가족관계가 형성되면 과거와 현재의 가족 구성원 간에 정체성 혼란이 뒤따른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차차 완화되겠지만 근원적인 문제는 잠복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연속극의 단골 소재가 바로 가족관계에 얽히고설킨 비화 아니던가. 이처럼 가족 구성과 해체가 다양해진 세상을 맞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지극히 이해타산적(?)인 관계로 변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감히 입 밖에도 내지 못했던 유명인의 가족사가 매스컴에 여과 없이 공개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그런 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활동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시대가 됐다. 당사자들부터 공과 사는 별개라는 서양식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모 광역 지자체장의 가족 간의 불미스러운 일과 모 가수의 가정사가 뉴스의 단골 메뉴가 됐으나, 몇 달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뉴스의 홍수 속에 묻혀 버렸다. 이는 이 시대가 우리의 전통적 가족관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패륜 행위도 위아래가 없다. 물질 만능이 낳은 부작용이라고 개탄하겠지만 급변하는 삶의 트랜드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생활이 복잡다단해짐에 따라 혈연관계를 대신하는 여러 역할 지기들로 인해 가족에 대한 의존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지 않고 싱글로 살아도 하나도 불편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됐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개개인의 삶을 옥좨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돼 가는 느낌이 든다. 부모가 인근에 살아도 합가하지 않고 굳이 셋방을 얻어 혼자 사는 미혼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물론 캥거루족도 있긴 하지만).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가 같이 살든 혼자 살던지 자식들에게 의지해 신세 지며 사는 것을 꺼린다.

 최근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2천1명의 은퇴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식에게 의지해 짐이 되기 싫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80%에 이르렀다. 가능한 자식으로부터 간병이나 생활비 지원을 바라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노후준비가 돼 있는 사람은 37%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머지 67%는 무대책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스스로 자신의 노후생활을 꾸려가겠다고 응답했다. 이것은 실버세대를 위한 공적 부조에 소요될 정부 복지 재정 수요의 증가를 의미한다. 이 조사에서 정기적으로 부모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얼마라도 주는 자식이 44%인 것으로 조사된 것을 보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부모봉양 의식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가족해체의 속도만큼 머잖은 장래에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설 명절을 맞아 왁자지껄하던 집안이 조용해지면서 다시 외톨이가 됐다. 마음의 동요 없이 온전한 일상으로 되돌아온 나 자신을 보면서, 시대변화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세상 흐름에 순응하는 나를 발견한다. 설 명절의 의미가 예전 같지 않게 퇴색했다고 안타까워하거나 젊은 세대의 행태에 거부감을 느껴서는 안 될 것 같다. 인생이라는 완행열차는 시대변화에 따라 물같이 흘러가는 것임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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