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1:52 (목)
세상 물정 어두운 학자 관료의 자승자박
세상 물정 어두운 학자 관료의 자승자박
  • 이광수
  • 승인 2019.01.3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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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청와대 대통령 경제보좌관의 부적절한 발언이 여론의 도마에 올라 그를 비난하는 수백 건의 댓글이 사회관계망을 후끈 달궜다. 입방아에 올릴 대상을 찾아 매스컴의 동향을 살피던 댓글부대가 자신들의 아지트를 공격하는 적수를 만났으니 오죽 신이 났겠는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대통령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경계한 청와대 참모진의 조언을 따랐으리라 믿는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과거 `중동 발언`의 오버랩 파문을 우려한 것 같다. 이미 시중에는 그의 말이 패러디돼 떠돈다.

 문 대통령은 미중 교역 편중의 분산방안으로 동남아 시장공략을 위해 신 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신설했다. 그 위원장인 김모 경제보좌관이 대한상의가 개최한 `열린 CEO 초청 간담회`에서 정제되지 않은 자기주장을 쏟아 낸 것이 화근이 됐다. 그는 조찬 간담회 연설에서 20~30세대를 겨냥해 젊은이들이 취직 안 된다고 `헬 조선`하지 말고 아세안에 나가보면 `해피조선`이 보일 거라고 했다. 또한 취직하기 힘들다는 대학국문학과 졸업생들을 왕창 뽑아 동남아시아 한글학교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의 진위를 따져보면 미취업은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명퇴ㆍ은퇴 연령인 50~60세대를 향해서는 하릴없이 산에만 가고, 사회관계망에 혐한 댓글만 달 것이 아니라 동남아로 나가라고 했다. 그는 지금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축구 감독이 한국체육계에서 구조조정 당해 쫓겨났으나 베트남에서 인생이모작의 대박을 터뜨렸다는 예까지 들먹였다. 이처럼 20~30세대와 50~60세대에 대해 거침없는 힐난조의 직격탄을 날렸으니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것은 당연지사다.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보좌하는 참모로서의 자질을 의심스럽게 한 사려 깊지 못한 언사로밖에 볼 수가 없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 수행능력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30세대와 50~60세대의 정부 지지도가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권 초기에 보였던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터져 나온 불만의 표출일 것이다. 하필 이런 때 그들을 타깃으로 삼아 심기를 건드렸으니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잘못을 사과했지만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가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구상한 신남방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다가 오버 액션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세대들이 직면한 힘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경제학자적 식견으로 쏟아낸 무책임한 발언은 그들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진의 일거수일투족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국정 최고책임자에 대한 국민 신뢰와 직결되기 때문에 신중한 언행이 요구된다.

 대학 강단에 선 지식 엘리트계층이 범하기 쉬운 실수는 자신들이 지닌 학식과 경험이 만인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자기 과신과 자만심의 도그마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경제참모진으로 발탁된 학자 출신 관료들의 수명이 길지 않은 것은 바로 현실과 괴리된 경제정책을 밀어붙이다가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경제관에 동의하지 않는 집단은 반대진영으로 몰아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정치 엘리트들이 범하는 실책의 대부분이 이런 인식의 소산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리더십에 반대하는 집단에 대해 사회관계망을 동원해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 기인한다.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는 지적 우월성과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보다, 보편적 일반의지의 소유자가 민심의 향배를 더 잘 파악하고 현실을 보는 감각이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1년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권력 이동이 시작됐다. 제1야당의 당 대표 선출 경쟁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는 장관들의 사퇴가 임박했으며, 선거제도 개편도 본격화될 것이다. 바야흐로 총선 바람은 24조에 이르는 지방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 면제 선심 공세로 서서히 표면화되고 있다. 앞으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의 여론 선점 여부가 차기 여야 당세의 우위를 판가름할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지만 민초들의 마음은 조석변이다. 오늘의 동지나 지지자가 내일은 적이 되고, 그 반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 정치판이고 민심이다. 모든 것은 오로지 표로써 심판할 뿐이다. 이번 경제보좌관의 실수처럼 아무리 선의로 행한 일일지라도 그걸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 즉 역지사지를 고려하지 않는 언행은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정치와 경제는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 잘못 다루거나 관리하면 상처가 나고 곪아 터져 나쁜 병원균의 온상이 된다. 조직의 리더는 항상 자신의 심신을 바르게 다스리는 자기수신에 힘써야 후환이 없다. 무소불위의 과욕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환란 자초의 빌미가 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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