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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단상
항아리 단상
  • 경남매일
  • 승인 2019.01.28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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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모처럼 시골에 있는 고향 집을 찾았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다. 가끔 들러 청소를 하거나 따뜻한 툇마루에 앉아 추억에 잠겨보기도 하는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한 곳이다. 벽장을 정리하던 중 우연찮게도 초등학교 시절 내가 그렸던 그림이 책갈피에서 삐져나왔다. 정성 들여 색칠하던 어릴 때 모습을 상상하면서 저절로 미소가 떠올라 꽤 그럴싸하게 그려진 풍경화를 기특함과 반가움으로 가만히 들여다봤다.

 바로 이 시골집 풍경이다. 초가지붕 추녀 밑에 걸린 무쇠솥, 흙담과 돌감나무, 아궁이 옆에 걸쳐진 싸리나무 빗자루, 자그마한 집, 유독 크게 그린 모퉁이의 장독대까지 자세히도 그렸다.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올라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장독대가 보인다.

 그 시절 시골에는 집집마다 부엌 가까운 곳, 햇살이 하루 종일 내리쬐는 자리에 어김없이 장독대가 있었고, 거기에는 크기에 따라 줄지어 선 항아리들이 놓여있었다.

 한복 치마 여민 형상에 짧은 저고리마냥 얹힌 조그마한 뚜껑은 문득 아낙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인가? 항아리는 부엌살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왔다. 장독대는 그 안주인의 부지런함의 표상이라고 했던가? 우리 집 장독대는 항상 반질반질한 항아리들로 어머니의 고단함을 빛내줬던 것 같다.

 아침 해가 들면 어머니는 항아리 뚜껑을 열어 햇볕을 받게 하셨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에는 반드시 뚜껑 덮인 것을 확인하고 나가셨다. 항아리에는 고추장, 된장, 간장, 식초들이 맛 들어갔고, 친한 이웃 아낙들은 종자 맛을 얻어가기도 했다.

 된장 담근 항아리는 아무나 손댈 수 없었다. 새끼줄에 대나무 잔가지와 고추를 달아 단지 뚜껑 바로 밑을 한 바퀴 빙 둘러 걸쳐 놓고, 장맛에 부정 타니 손대면 안 된다던 어머니의 엄포는 불문율이었다. 생각해 보니 발효 과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그만큼 정성을 기울여야 반찬의 밑 맛을 결정짓는 장맛 만들기가 가능했기 때문이었을 터다.

 구수한 향기가 상긋하니 풍기는 시기가 장을 뜰 때이다. 나눠 담겨진 된장과 간장은 새 항아리에서 독특한 제맛을 또다시 만들어 간다.

 항아리는 그 주인의 비호를 받아 온종일 햇볕 드는 자리를 차지하고 햇살에 달궈지면서 빛과 열과 공기의 작용으로 맛의 독특함을 형성해냈을 게다.

 항아리는 숨 쉬는 그릇이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항아리는 아낙네들의 물동이로, 술 내리는 솥으로, 약탕기로, 콩나물시루, 떡시루로 우리 생활에 두루 사용되며 안주인의 자존심이자 그 집의 독특한 맛 거리를 보관하는 소중한 저장고였다.

 우리가 도시에서 살게 되자 얼마 뒤 어머니도 고향 집을 비워둔 채 우리 곁으로 오게 됐다. 짐 몇 보따리를 이사 하던 날, 어머니는 유독 항아리만은 모두 가져가려고 챙기셨고 아파트 좁은 베란다에 놓을 자리가 없다는 만류에 결국 작은 항아리 두 개만 차에 실을 수 있었다. 아쉬운 듯 커다란 장독을 어루만지시던 어머니, 장을 담그고 또 장을 뜨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어머니는 항아리와 함께해 오셨던가!

 요즈음 대부분의 도시 사람들은 장을 직접 담그지 않고 사 먹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김치는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그러나 항아리에서 익은 장맛의 은근함과 잘 발효된 김치의 시원함은 엄격하게 만든 제조 된장이거나 첨단냉장고에서 발효시킨 김치라 할지라도 그 독특한 맛을 따라잡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항아리에서 익는 자연의 맛, 자연의 조건에서 발효되는 신선한 그 맛을 알고 기억하는 세대는 점점 줄어 들어간다. 부엌살림에서 누리던 요긴함과 저장고로서의 가장 소중한 지위를 잃어버리고 항아리는 자리만 차지하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돼 가고 있다.

 툇마루에 앉아 둘러보니 고향 집은 사뭇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굵어진 돌감나무와 장독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묵은 항아리들이 먼지 덮어쓴 채로나마 변함없이 놓여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가워졌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항아리지만 깨끗이 닦고 싶어졌다. 소매를 걷고 호스를 연결해 항아리를 씻기 시작했다. 어머니만큼 훌쩍 커버린 어린아이가 항아리를 씻는다. 씻긴 항아리는 세월을 잊은 듯 그 모양 그대로다. 회상에 젖어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도 모르게 살짝 졸았나 보다. 눈을 떠 보니 해는 툇마루를 벗어나 장독대에 그윽하니 머물고 있었다. 반질반질 윤나는 항아리에 손을 대 보니 햇살을 품었는지 열기가 따사하다.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 마냥 항아리들은 긴 역사를 지닌 채 그 모양 그대로 묵직하게 늘어서 있다. 생각해 보면 항아리처럼 굳건하면서 제 본질을 잃지 않는 물건이 또 있을까? 든든하고 굳어 보여도 날아오는 돌멩이에 부딪혀 깨질 수도 있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묵직한 물건, 오랜 세월을 별 탈 없이 잘 살아와 담을 공간을 준비하고 묵묵히 장독대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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