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7:58 (금)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 이광수
  • 승인 2019.01.27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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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4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에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란 명언이 실려 있다. `사물의 이치를 연구한 후에야 앎을 얻을 수 있고, 그 앎이 지극해진 후에야 뜻이 성실해진다. 생각이 성실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야 자신을 닦을 수 있다. 자신을 닦은 후에야 집안이 바로 잡히고, 집안이 바로 잡힌 후에야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야 천하가 평안해진다(다산의 마지막 공부)`. 왜 이런 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명구가 절절한가. 나라와 조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뜻을 바로 세우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자아를 상실한 것과 같은 것으로,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동서고금의 고전을 섭렵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기 마음 다스림이 모자라 남에게 상처 주는 파렴치한 언행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체육계의 상습적인 폭력과 성추행이 미투운동의 여파로 만천하에 공개됨으로써 대한체육회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동안 쉬쉬하며 숨겨져 왔던 체육지도자들(코치 등)의 상습적인 폭행에 심적ㆍ육체적으로 고통받으며 숨죽여 지낸 당사들의 응어리진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가해자들이 형사상 처벌을 받게 됐는데도 대한체육회 수장과 산하 연맹 수장들은 사태 인식을 못 한 채 자기변명에 급급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리더란 조직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며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남 탓, 아랫사람 탓만 하는 사람은 리더의 자격이 의심스럽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대통령이나 갖춰야 할 지도자의 덕목이 아니다. 목포 구시가지 문화재 거리 지정과 관련해 부동산 투기 혐의를 받고 있는 모 국회의원의 자기 항변을 들어보면 후안무치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선한 뜻으로 추진한 일일지라도 일처리 과정이나 결과의 위법성(이해충돌)이 문제 되면 자신의 선의가 악의로 지탄받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걸 애써 아니라고 변명해봐야 더 깊은 오해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변명을 위한 변명으로 이겨보겠다고 버티면 결국 자멸의 길이 가깝게 된다. 그건 상처투성이의 영광도 아닌 황량한 들판에 외롭게 선 초라한 몰골의 자화상일 뿐이다.

 사람은 각자 인격에 걸맞은 그릇의 크기가 있다. 아무리 강권해도, 아무리 차지하고 싶어도 내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사양하는 것이 후환을 없애는 현명한 리더의 처세술이다. 우리 사회가 권력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로 넘쳐나서인지 설자리와 앉을 자리,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가리지 못하고 껍죽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추락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권력이나 지위는 한때이지만 한 인격체가 머물다 간 자리의 행적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영구히 남는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관직에 임하는 자의 자세와 지켜야 할 품위를 목민심서에 세세하게 적시해 놓았다. 다산의 사상을 접해보면 학문도 닦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면서 직분을 정심으로 지켜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류에 편승해 자기 소신을 수시로 바꾸면서 권력의 끄나풀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을 본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신념 변화인지 권력욕인지 모르지만, 지조와 연결 시켜보면 지금까지 유지해온 자신의 품격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십여 년 전 모 지방공기업 수장은 공은 자기가 차지하고, 책임과 과는 아랫사람에게 떠넘겼다. 권위주의의 화신으로 자리 유지에 급급했던 그는 비굴한 리더의 전형이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들은 자신의 보신을 위해 부하들의 희생을 제물로 삼는다. 칼자루를 쥔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한 위선적 개혁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잔머리를 굴린다. 용감해야 할 땐 용감하지 않고 꽁무니를 빼고 책임질 일은 아랫사람에게 떠넘긴다.

 고전 심경(心經)에 `사람 마음은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이 바르게 바뀌면 모든 것이 바르게 변하는데 그 마음이 바뀌지 않으니 추한 모습으로 남는다`고 했다. 수신(修身)은 마음을 갈고닦는 일이다. 수신에 탐욕의 떼가 묻으면 자기 스스로 수신이 불가능하다. 타력에 의해 그 탐욕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치욕스러운 삶으로 추락하고 만다. 진퇴가 불분명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책은 뜻과 마음을 바로 세울 의지가 아예 없거나, 애써 눈 감아 버리려는 욕심이 낳은 결과다. 오직 자기 보신만이 신념이자 목표이기 때문에 머무를 때와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기심과 내로남불로 사분오열된 국론 분열의 치유책은 바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속 깊은 뜻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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