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20:58 (수)
침묵의 카르텔을 거스르는 힘
침묵의 카르텔을 거스르는 힘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9.01.17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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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그래서 무섭다.

소통이 없는 사회에서

거대한 악마가 출현하듯이

침묵하는 사회에서는

무수히 스러지는 약자의

절규가 넘친다.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경우에 따라 침묵은 최고의 무기가 된다. ‘침묵이 금이다’는 말에 힘이 실릴 때가 있다. 개인이 숱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데도 입을 다물고 세월을 참으면 진실은 드러날 때가 있다. 인고의 세월 앞에 얻은 승리는 달콤할 수 있지만 잃은 시간을 보상받기는 어렵다. 지나간 세월을 수용하면 ‘세상은 결국 순리대로 흐른다’고 자위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침묵 카르텔에 금이 가고 있다. 카르텔은 기업 상호간에 경쟁을 줄일 목적으로 유사산업 분야나 동종 기업이 손을 잡은 경우를 말한다. 판매 카르텔을 공고하게 만들면 소비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카르텔을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대부부 국가가 카르텔을 허용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악덕 기업이 판매 카르텔이든 생산 카르텔이든 카르텔의 칼을 들고 무수한 희생자를 양산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 침묵의 카르텔이 수많은 약자들의 눈물을 쏟게 했다. 침묵은 약자의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강요된 침묵이 연합해 상대적으로 약자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갔다. 우리 사회가 펼쳐놓은 정의롭지 못한 덫에 나뒹구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 침묵의 카르텔이 우리를 엄습해도 애써 외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한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요즘 체육계에 부는 미투 사건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있다. 폐쇄된 조직에서 폭행과 성폭행으로 힘들어하던 희생자가 거대한 침묵의 그릇을 깨트리고 있다. 빙상과 유도, 축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성폭력 미투가 일어나고 있는데 대해 ‘터질 게 터졌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놔뒀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팀 코치의 성폭력 의혹을 시작으로 여러 종목에서 미투가 이어지고 있다. 체육계에 널리 퍼져있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덩달아 커지고 만연한 침묵의 늪을 걷어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다행이다.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죽음 같은 침묵은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어린 선수는 입에 담기 힘든 고백을 해야 했다. 초등학교 때 멋모르고 당한 수치를 말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게 분명하다. 대부분 어린 선수들은 힘든 상황을 주위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특별한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냥 넘어가면 별일 없는데 괜히 일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주위의 반응에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침묵은 그래서 무섭다. 소통이 없는 사회에서 거대한 악마가 출현하듯이 침묵하는 사회에서는 무수히 스러지는 약자의 절규가 넘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관성에 맞설 때 나온다. 침묵은 인간이 만든 가장 쉬운 타협이다. 눈에 보이는 잘못된 현상이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찾을 수 있는 잘못된 방향을 보고 눈을 감으면 모든 게 편하다. 우리 사회에 냄새나는 구석을 보고 고개를 돌린 무수한 사람들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떳떳한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게 문제다. 나와 네 앞에 선 사람이 공범인데도 말이다.

 침묵의 카르텔은 사회 깊은 곳에 숨은 병폐였기 때문에 쉽게 들춰 치료하기 힘들었다. 숭고한 희생의 눈물이 모여야 치유할 수 있다. 어린 운동선수들이 강요된 침묵의 긴 터널을 지나다 이제 막 깨어 세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시 침묵의 의자에 앉아 나 몰라라 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음침한 침묵의 카르텔이 물러나는 곳에 공정한 사회가 들어선다. 이제 깨어지기 시작한 침묵의 카르텔이 완전히 박살나는데 더 큰 힘이 모아져야 한다. 침묵은 결코 금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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