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에 효자 없다
잔병에 효자 없다
  • 이광수
  • 승인 2019.01.0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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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모 TV 프로 `거리의 만찬`에서 간병인의 삶을 돌아본 `삶의 조건`이 시청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의 눈물겨운 사연에 나 역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최근 `간병살인`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처분과 맞물려 나 자신이 저런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고민해봤다. 2년 동안 치매 어머니를 간병해 온 착한 딸, 12년째 남편간병을 하고 있는 열부 아내, 10년 동안 어머니를 간병하다 얼마 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효자 아들 등 치매 환자의 간병으로 고통받은 세 사람의 사연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는 75만 명으로 노인 인구의 10%에 이른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오는 2024년에 100만 명을 돌파하고, 2039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중앙치매센터 추계). 이 수치는 선진국의 60세 이상 고령층을 기준으로 조사한 추계가 아니라서 우리나라도 추계대상 연령을 낮추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늘어나는 치매 환자의 간병으로 고통받는 가족의 증가와 함께 사회적 비용도 대폭 늘어날 것이다. 사람을 죽인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간병살인`의 경우 불가항력이란 점에서 법적 관용이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상황 발생은 효를 인간의 으뜸 덕목으로 지켜온 우리의 전통적 가족 윤리관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신호이다. 100세 장수 시대를 맞아 오래 사는 것이 마냥 축복받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무시로 느끼는 세상이 됐다. 건강하지 못한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뿐이다. 자식이 여럿 있어도 부모 돌볼 자식이 없어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수시로 발생하고, 치매 걸린 부모를 외국 공항에 버리고 오는 폐륜 행위가 판치는 것은 장수 시대가 낳은 어두운 그늘이다.

 요즘 TV 주말 연속극에서 치매 어머니의 해프닝을 주제로 전개되는 가족과 그 주변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것은 치매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가족의 일처럼 느껴지는 동병상련의 발로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분 간병인의 리얼 스토리에서 `잠 한번 실컷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일상인 이라면 늘 평범하게 누리는 잠자는 행복까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삶이 치매 환자로 인해 무참히 망가진 채 간병이 생활 전부가 돼 버린 삶. 24시간 치매 환자 돌봄이 주는 정신적ㆍ육체적 스트레스로 `같이 죽자`는 절규 끝에 간병살인까지 저지르고 마는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에서는 치매 환자에 대한 건강보험을 확대 적용하고, 재가 요양보호사의 간병 케어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것도 하루 3시간으로 제한돼 있으며 명절과 공휴일 케어는 없다. 따라서 치매환자간병은 오롯이 가족케어로 감당할 도리밖에 없는 실정이다. 간병휴직의 경우 일본에서는 40% 유급 휴직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무급이다. 치매 환자 가족이 겪는 이중고통은 일과 간병 사이에서 가족들의 역할 분담에 따라 수입이 감소돼 가계 궁핍이 심화되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는 치매 환자는 국가가 책임진다고 장담했지만 근본적인 치매 대책은 아직 없어 보인다. 가족 간병인들도 공통적으로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치매 간병인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웃음을 잃은 고통의 삶 속에서 우울감에 빠져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10년간 돌보다가 자신도 치매에 걸린 것을 안 남편이 부부동반 자살한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제 치매는 노인들만의 질병이 아니라 40~50대 한창 일할 나이의 중년층에서도 빈발하고 있다고 한다. 유전적 요인도 있겠지만 인스턴트화한 식습관과 과도한 전자매체접촉, 영양 과잉으로 인한 고도비만, 알코올 중독 등의 원인으로 치매 환자 수가 증가일로에 있다. 풍요로워진 물질문명의 부작용은 치매라는 난치성 만성질환의 증가로 건강하지 못한 장수 시대를 맞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한 게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인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한 각종 건강저해요인에 노출된 현대인의 생활습관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이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줄이고 마음 비우기로 안분 자족하며 살다가 떠나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파도 가끔 내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부모님, 언젠가 이 세상과의 마지막 날이 오는 그때까지 함께 살게 해주셔요.` `어 여, 그 강을 건너가셔요. 하늘나라에서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사셔요. 어머니께 약속한 천 가지 음식을 반밖에 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치매 어머니를 돌보면서, 그리고 떠나보내고서 통곡한 어느 딸의 독백이 가슴을 치며 다가온다. `잔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부모자식 간뿐만 아니라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우환 있는 집안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어두운 침묵만 흐를 뿐이다. 가족 간병인들이 국가와 우리들에게 던지는 아래와 같은 간절한 메시지를 결코 외면하거나 모른 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 사회로부터 가족 간병인을 고립시키지 말아 주셔요. 가족 케어에 마냥 기대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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