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1:38 (금)
이별 연습이 필요한 시대
이별 연습이 필요한 시대
  • 이광수
  • 승인 2018.12.23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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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한 인격체인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겪는 만남과 이별은 인생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를 만나서 내가 태어나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족의 연을 맺는다. 유아기를 지나 성장함에 따라 친구가 생기면서 타인과의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또래 만남을 시작으로 이성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나이가 들면서 학연, 지연, 직장, 사회생활로 만남의 인연이 확장된다. 그중 자신의 운명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이 이성과의 만남이다. 10대 후반기를 시작으로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증폭됨에 따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고 새로운 인연에 눈을 뜨게 된다. 인간이 갖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생식본능의 발로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희로애락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고 나면 더 거론할 명제가 없다고 할 만큼 사랑은 삶 자체를 지배하는 핵심요소이다. 그러나 산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적 변수와 인간관계의 연속 선상에 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추상명사가 의미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이별이라는 불청객이 끼어들면 그 의미는 복잡 미묘해진다. 물론 이별은 이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직장생활, 주거환경변화 등 여러 변수와 얽혀서 생기지만 종국에 가서는 삶과의 영원한 결별이라는 죽음으로 귀결된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여자의 일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너무 안타깝고 가슴 아파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다. 불치병에 걸린 한 여성 암 환자의 투병 생활과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그린 삶과 이별의 슬픈 이야기였다. 동병상련이라고 같은 암 환우들의 모임에도 참석해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고, 아픈 몸이지만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투병에 대한 용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환우 중 먼저 세상을 뜨는 사람이 생기면서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불안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예쁜 두 딸을 둔 선하고 고운 얼굴의 초등학교 여선생님의 얼굴에 시시각각 드리워지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를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나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갈 테니 우리 큰딸 채원이와 작은딸 다원이가 자라서 뒷바라지할 때까지 만이라도 살게 해주셔요. 좋은 엄마 나쁜 엄마 필요 없이 그냥 애들 곁에만 있고 싶어요." 두 눈 가득 고인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는 그 여인의 말들이 처절한 절규로 가슴을 치며 다가왔다. 저렇게 곱고 선하게 생긴 젊은 엄마에게 왜 몹쓸 병이 침범했을까. 운명의 저주는 선한 사람에게 더 쉽게 접근한다더니 하늘도 무심한 것 같았다. 그녀의 간절한 소망은 끝내 신의 구원을 받지 못한 채 두 딸과 늙은 부모의 오열 속에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죽음으로써 산 자들과의 인연을 끊은 것이다. 하늘 아래 생명이 있는 것으로 태어난 모든 것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죽음이다. 한편, 일상적인 삶 속에서 겪게 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이별 또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좋은 인연으로 다시 연결되면 그 상처는 쉬 아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씻지 못한 상처와 앙금이 미움과 원망이 돼 비참한 결말을 초래하기도 한다. 최근 `하트 브레이크 마켓`이 처음 서울에서 문을 열었다. 하트 브레이크 마켓은 옛 연인에게서 받은 선물을 되파는 일종의 벼룩시장으로 베트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개점 일에 맞춰 `이별이 어려운 사람들의 오후 8시 모임`이란 작은 세미나가 열렸는데 9명이 참가해 이별에 대한 진지한 경험담을 나눴다고 한다. 5년 동안 연인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겪은 이별 통보로 환승 당한 기분을 느꼈다는 사연, 자기취미에 빠져 자신에게 무관심해진 연인과 이별을 준비 중이라는 사연, 자신에게 완벽함만을 강요하는 상대가 싫어져 5년간의 만남을 정리했다는 사연 등 열띤 토론이 오갔다고 한다. 다들 사랑이라는 마술에 걸렸다가 문득 찾아온 이별 때문에 가슴에 남은 상처를 지우기가 무척 힘들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자의든 타의든 이별이 따르기 마련이다. 더욱이 싱글라이프가 대세로 굳어가는 새로운 삶의 트렌드에 따라 이별도 삶의 필연적인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연습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 굳이 지난 인연에 연연하면서 속 태우기보다 `그래 네 좋을 대로 해!`하며 쿨하게 털고 새 출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이혼율 40%(서구 유럽 50%) 시대를 맞아 인연 맺기와 끊기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평생 일편단심 민들레로 사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이혼 후 재혼이나 황혼 이혼 후 재혼하는 커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사랑과 이별도 서로 상처를 덜 주고 덜 받는 방향으로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세상이 됐다. `인연 만들기 연습`에 못지않게 결별의 아픔도 면역을 키우는 `이별 연습`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 같다. 모든 만남이 잉태한 이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은 더 좋은 인연을 만남으로써 극복되듯이, 사랑의 실패(이별)도 인생의 필연적인 한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죽을 만큼 슬픈 이별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언젠가 이별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태어난 존재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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