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7:56 (금)
엽관제와 낙하산 인사
엽관제와 낙하산 인사
  • 이광수
  • 승인 2018.12.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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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연이은 철도 사고에 책임을 지고 코레일 사장이 전격 사퇴했다. 그의 사퇴를 두고 낙하산 인사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의 원조는 1829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잭슨이 `엽관제(spoil system)를 공직의 민중에 대한 해방과 공무원에 대한 인민 통제의 역할을 지닌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관행이 정착됐다. 엽관제(獵官制)는 공무원의 임면을 당파적 충성이나 정신에 의해 결정하는 정치적 관행을 말한다. 이 제도는 그 후 당초 특권적 관료제의 타파라는 목적을 잃고 관직의 당파적 독점 내지 이용과 심지어 매관매직 등의 폐해로 정치부패가 표면화되자 메리트시스템(merit system: 자격 임용제)이 채용되면서 제도적으로 개선됐다. 그러나 엽관제는 선거제도가 존재하는 한 부분적으로 채용하지 않을 수 없다. 엽관제 즉, 낙하산 인사는 정권 창출 과정에서 협력한 공신들에 대한 대우이기 때문에 정치세력에겐 일종의 전리품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이조시대 공신록에 올린 수만 명의 명단을 보면 모두 보은 공신들로 대대로 선대의 음덕을 입는 특혜를 누렸다. 공신에는 권력 창출이나 내란 평정 등에 기여한 자에게 주는 개국공신이나 정란공신, 외적이 침입했을 때 크게 공을 세운 신하에게 주는 선무원종공신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가면서 임금을 잘 보필했다는 이유로 내린 호종원종공신은 수천 명에 이른다. 이때 내린 공신 중에는 정3품 이상 당상관과 당하관, 아전, 무수리, 몸종, 노비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책봉돼 공신의 의미를 무색케 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교체나 변혁기에는 한 자리 챙기려는 목적으로 권력에 충성하는 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 결과 논공행상의 대가로 낙하산 인사가 단행된다. 권력 창출에 기여한 자에 대한 보은 인사는 어쩌면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자신들과 뜻을 같이한 동지적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을 정치 권력의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안정적 통치기반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도로 복잡다단해진 사회 구조상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 없이는 국가 중요부서의 일을 관리하고 경영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번 코레일 사태가 말해 주듯이 그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을 보은 인사로 임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장관급과 특수직 차관급 보직자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청문 결과에 임명권자가 불응해도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다. 일종의 고위직 정부 인사의 도덕성과 자질에 대한 검정에 그치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그래도 이런 절차를 통해 피임명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대한 검정이 어느 정도 이뤄지기 때문에 대통령의 독단적 인사권 전횡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산하 기관단체장, 임원인사에는 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공모제라는 형식적인 절차는 거치지만 내정자는 이미 선거 공신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멋모르고 응모한 자는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최근 몇몇 시도단위 지자체에서 산하 대규모 공기업 단체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 그 외 지자체의 산하 기관단체장이나 보좌진, 각종 위원회위원장, 자문위원 등은 인사검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낙하산 인사의 폐해인 전문성 유무 검토 없이 임명하는 보은 인사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낙하산 인사는 외부 낙하산도 있지만 내부 낙하산 인사도 문제다. 선거 때 알게 모르게 줄서기를 잘해야지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각종 승진 인사 시 불이익을 당한다. 자신에게 충성한 공직자에 대한 리스트는 선거캠프에 의해 이미 작성돼 있다. 소위 공무원 편 가르기가 선거 때 난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자체장들은 직원들을 두 부류로 갈라놓고 인사를 한다. 주로 학연, 지연, 공직연을 근거로 선거캠프연관 인물 중심의 인사를 해 잡음이 많다.

 공직사회의 경우 승진은 필생의 목표이다. 6급에서 사무관으로 승진하기 위해 피를 말리는 경쟁을 한다. 인사고과에 의해 승진서열이 매겨져 공정인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충성파와 아부파들이 중요 보직으로의 영전과 승진은 불문가지다. 직언과 고언을 일삼는 성실 노력파는 가끔 쌀에 뉘 정도로 운 좋게 발탁될 따름이다. 필자 역시 공직 재직 시 능력에 걸맞게 원칙대로 인사를 하는 윗분들도 모셔봤지만 출세욕에 눈먼 일부 부패한 리더는 고언과 충언에 귀를 막고 마이동풍이었다. 간신모리배와 재방들에 둘러싸여 편파적 인사 전횡을 일삼으며 뒷구멍으로 구린 짓을 하는 것을 목도했다. 줄도 배경도 없어 음지에서 죽도록 일하며 부림만 당하다 퇴직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자를 상사는커녕 도적이라고 거침없이 욕한다. 특히 산하 기관단체장과 임원 임명 시 선거캠프 측의 보은 인사 대상 명부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유효하게 활용된다. 평등의식이 강한 우리 국민성은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한자리 준다면 마다않고 맡았다가 능력 부재로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부 낙하산 인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앉을 자리인지 알고 설쳐야 하는데 승진서열 50등도 안 되는 사람이 상위등급이라며 측근에게 인사 청탁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예나 지금이나 낙하산 인사는 사람에 관한 일이라 항상 공정성 시비를 안고 있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인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는 인사권자의 자질과 도덕성, 청렴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사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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