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2:14 (토)
흰 코끼리와 예산낭비
흰 코끼리와 예산낭비
  • 이광수
  • 승인 2018.12.09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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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이광수 소설가ㆍ주역명리작명가

 정기국회가 정치적 이슈로 파행을 거듭하다가 올해 예산편성액 470조 6천억 중 5조 2천억을 삭감하고 민주당과 한국당이 합의해 통과됐다. 나머지 야 3당은 선거제 개편안의 무산을 핑계로 반대하는 가운데 모당 대표는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양당체제로 뭉쳐도 될까 말까인데 한자리할 거라고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셋으로 갈라져 무슨 힘이 있겠는가. 버스 지나고 손들기다. 금연 예산안 통과 내역을 보니 일자리 창출예산과 출산장려지원금 등 정책실패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그러나 오는 2020년 총선을 염두에 둔 탓인지 SOC 예산은 늘어 지역구 챙기기 선심성 예산은 늘었다. 이른바 예산안 심사 소위에서 쪽지예산이 난무했다는 증거다.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재선을 노리는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 자기 치적 홍보용으로 써먹기 위해서다. SOC 예산은 지역 개발이라는 명분이 강하지만 일종의 선심성ㆍ전시성 예산이 대부분이다. 기존 시설물이나 도로망, 철도, 공항 시설 등으로도 생활에 큰 불편이 없는 데도 뭔가 눈에 띄는 사업을 벌여야 큰일을 한 것으로 지역주민들에게 어필해 선전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흰 코끼리 문제가 생긴다. 흰 코끼리는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돈만 먹는 실속 없는 애물단지를 풍자하는 말이다. 흰 코끼리의 연원은 고대 태국 왕들이 진귀한 흰 코끼리를 직언을 일삼는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선물하는 데서 유래했다. 왕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신하가 하사받은 흰 코끼리를 돌보다가 가산을 탕진해서 결국 파산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보복성 벌치고는 참 치산한 벌이다. 흰 코끼리 사례는 각종 사회간접자본 투자에서 나타난다. 스포츠 경기장, 도로, 공항, 항만, 수자원 관리, 테마파크 조성, 기념물 설치, 성역화 사업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사업들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은 예비타당성 검토를 거치지만 지자체에서 벌리는 매칭 사업들의 경우 예타가 필요 없는 사업들이 많다. 국책사업의 경우 흰 코끼리 사례는 23조 원을 들이고도 제 기능을 못 하는 4대강 종합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초 전전 정부에서 국토 종ㆍ횡단 운하를 검토했다가 타당성 검토에서 문제가 생기자 4대강 종합정비사업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업은 2017년도 영국의 가디언지가 선정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쓸모없는 세계 10대 흰 코끼리 사업`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2조 7천억을 투입해 건설했으나 물류 기능을 상실해 방치상태에 있는 `경인 아라뱃길`, 외신에서 가장 조용한 공항으로 불리는 강원도 `양양 공항` 등이 있다. 그 외 지자체에서 의욕적으로 벌인 사업들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애물단지로 전락해 방치하고 있는 SOC 사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난해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들의 사후활용계획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몇 개 시설은 자체 용도변경으로 활용 가능한 것도 있지만 산을 허물어 설치한 몇몇 시설들은 원형복원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산사태의 우려도 있어 인근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동계올림픽 시설물 사후 관리 문제를 두고 도와 중앙정부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으니 일단 벌려놓고 보자는 식의 흰 코끼리 사업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창원시의 경우 20여 년 전 창곡지역에 40억을 투입해 분뇨처리시설을 완공했으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고 폐기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 일로 책임진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사례들은 우리가 낸 세금을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낭비해 정부 불신과 사회 불신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OECD 국가별 사회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6%로 35개국 중 23위(2016년)로 하위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도로 교통망과 지하철의 편리한 운영시스템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감탄한다. 그러나 가끔 시외로 나가보면 그대로 둬도 차량통행에 아무 지장이 없는 약간 굴곡진 도로를 직선으로 하거나 터널을 뚫는다고 파헤쳐놓고 있다. 조금 둘러 가면 어떤가. 어쩌면 조금 완만한 굴곡진 도로가 낭만이 있다. 지금 경남도에서는 3조 6천억이 소요되는 내륙고속철도 건설의 예비타당성조사 제외를 정부에 강력히 건의하고 있다. B/C 1.0에 미달되는 대형국책사업은 시행이 불가능하다. 과연 이 철도가 예타 제외를 해야 할 만큼 시급한 사업인가. 서부경남발전과 남해, 고성, 거제권 관광지 활성화에 기여할 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KTX 밀양역 설치 문제로 한 때 지역 여론이 비등해 소원대로 역이 설치됐다. 그러나 역 설치 후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기는커녕 빨대 현상으로 서울, 부산으로 원정 구매 가는 바람에 지역 상권은 오히려 위축됐다고 한다. 큰 항구와 공항이 없는 남해안권이 내륙고속철도 개설로 비용 편익 측면에서 효과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예타 심사에서 탈락된 국책사업이 아닌가. 그런데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영호남 화합 남해~여수 간 해저터널을 건설해야 한다고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해저터널을 뚫으면 영호남이 화합하는가. 참 웃기는 얘기다. 영호남이 화합 못 하는 게 해저터널 탓인가. 영호남 갈등은 구태정치인들이 조장한 지역주의 선동의 부산물이다. 엉뚱한 곳에 원인을 전가하지 말자. 제발 이제부터라도 더 흰 코끼리가 정치 논리로 탄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자체의 예산심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10일까지 심의가 끝나면 내년 예산이 확정될 것이다. 지자체만이라도 다시는 흰 코끼리가 태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심의해 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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