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2:41 (목)
Nurse 그리고 care
Nurse 그리고 care
  • 신소영
  • 승인 2018.12.02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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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소영 인제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미국 유학 시절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위해 연구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때였다. 지도교수님의 연구조교로 일하면서 대상자에게 연구목적과 내용 및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는 등의 안내를 하던 중 대상자와 함께 온 아내가 몇 번이나 이마를 찌푸리면서 손가락 관절을 주무르는 모습에 왜 그러시냐고 여쭤봤다. 60대 여성이었던 할머니는 얼마 전 류마티스 관절염을 진단받고 약물을 복용 중인데 최근 관절 통증과 그로 인한 일상생활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왜 이런 병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특별한 치료방법도 없이 이렇게 평생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힘들다"며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제대로 영어도 안 통하는 데 어설프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못하겠고 해서 그저 가만히 그분의 손을 잡고 등을 쓸어드리며 한참을 옆에 있어 드렸다. 얼마 후 감정을 추스르신 할머니께서 가만히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딸이 해외 출장이 잦은 직장생활을 하느라 어린 손녀딸을 자신이 돌보고 있는데, 유치원에 가기 전 손녀가 아침으로 평소 제일 좋아했던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손마디가 너무 뻣뻣하고 붓고 아파서 손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고 열심히 주물러봤지만 도무지 통증이 쉽게 가시질 않아서 결국 딸기잼 병의 뚜껑을 열 수가 없었고 손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대신 시리얼을 줬다고 한다. 그러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손녀가 떼를 쓰며 투정을 부렸고 결국 아침도 먹지 않고 유치원에 갔다고 했다. 할머니가 돼 서는 어린 손녀딸이 좋아하는 아침 식사도 제대로 차려주지 못하고 굶겨 보내고 나니 꼭 나 스스로가 아무 쓸모가 없이 느껴지고 너무 서럽더라,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냐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러면서 심장병, 암, 당뇨병, 고혈압과 같은 질환에 대한 연구나 지원은 많이 하면서 왜 우리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그런 게 별로 없느냐고, 죽을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에게 이환되지 않는 소수가 겪는 건강 문제라는 이유로 사회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고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건강전문가들에게서조차 외면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신체 검진을 하고 혈액검사를 해서 그에 맞는 약을 주는 게 다야… 물론 내 주치의는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주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는 아닌데… 일상생활에서 매 순간 겪는 나의 어려움과 고통을 들어주지는 않아… 그게 너무 힘들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손을 잡아주고 들어주기만 해도 훨씬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며 거듭 고맙다고 하셨다.

 그날 나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겪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인지적, 심리적, 사회문화적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다수가 아닌 소수라는 이유로, 치료가 어려운 만성질환이라는 이유로, 사망률이 높은 심각한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되는,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매 순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환자군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그 누구도 아닌 간호사가 해야 하지 않은가…. 다시 한번 우리의 역할이, 간호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아프고 병들고 약하며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고 적절한 치료를 해서 이들의 아픔을 덜어 주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건강전문가들의 가장 큰 역할이고 책임이다. 간호사의 역할은 질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히 치료하는 의사와는 좀 다르다. 간호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환자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근거에 기반한 과학적인 중재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건강 문제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예측해 예방과 관리를 위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환자의 신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측면까지도 고려해 이들을 총체적으로 사정하고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대상자 중심의 전인 간호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환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지지해주고 대변해줄 수 있어야 하며 환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돌보는 가족의 어려움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간호사는 cure가 아닌 care를 제공하는 사람인 것이다.

 얼마 후 내 연구에 참여 의사를 밝히고 나를 찾아온 그 할머니는 연구 관련 사정이 다 끝난 후 내 손을 꼭 붙잡고 말씀하셨다. 흘려들었을 수도 있었을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내 아픔을 공감해주고 우리를 이해하려 가슴을 열어줘 정말 고맙다. 이것이 내가 간호사로, 간호학과 교수로 살아가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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