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49 (금)
노조 개혁 더 미룰 수 없다
노조 개혁 더 미룰 수 없다
  • 오태영
  • 승인 2018.11.29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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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장

 1970년대 영국은 노조 천국으로 불렸다. 노조 등쌀에 1968∼1979년간 정권이 여섯 차례나 바뀌었다. 이런 영국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보수당 마거릿 대처가 노조 무력화를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한 1979년부터다. 대처는 노동시장 개혁을 개혁리스트의 첫머리에 올려놓고 노동 관련법을 바꾸고 `법과 원칙`을 적용해 노조 파워를 무력화시켰다. 노조 결속의 원천인 클로즈드샵(closed shop) 제도를 없애고, 1년간 석탄노조와 싸워 굴복시켰다. 독일은 1990년 통일 후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 총재는 1998년 정권을 잡고 노조를 끌어들여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우리의 노ㆍ사ㆍ정위원회 격인 일자리창출연대를 통해 추진하려 했지만 또 실패했다. 슈뢰더는 노동시장 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개혁안을 총리직 사임의 배수진을 치고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슈뢰더는 분배 중심의 사회주의 정책에서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업 관련 혜택을 줄여 실업자를 노동시장으로 끌어내고, 파견근로 자유화, 단시간 근로제도 도입 등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다. 슈뢰더는 인기를 잃어 정권을 내놨지만 연이어 정권을 잡은 메르켈은 슈뢰더의 노동시장 개혁을 그대로 추진해 나갔다. 두 나라는 강성노조 또는 분배에 익숙한 반대자들과 정면으로 싸워 경제를 살렸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 실업률을 낮추는데 성공한 케이스다.

 반면 뉴질랜드와 아일랜드는 합의에 의해 노동시장 개혁이 성공한 경우다. 100여 년 동안 중앙집권적 노사관계를 유지해 강성노조가 만들어졌던 뉴질랜드는 강성노조가 만든 노동당이 집권해 모든 노동자를 의무적으로 노조에 가입케 하고, 각종 사회입법과 사회보장제도를 무차별적으로 도입해 1980년대 중반 노동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나라였다. 3차례의 노동시장 개혁이 노조의 파워에 밀려 실패했으나 1991년 `고용계약법`을 도입해 중앙집권적 노사관계가 분권적 노사관계로 바꿔 개혁에 성공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경제가 가장 침체했던 아일랜드는 1987년 야당 및 노조와 사회연대협약(Social Partnership Agreement)을 체결함으로써 경제를 반석에 올려놨다. 지금까지 7차에 걸쳐 체결된 협약은 임금 인상률, 최저임금, 세제, 보건, 사회보장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은 강성노조로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제조업 공동화 위기까지 겪었다. 선진국의 이런 경험은 우리도 강성노조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정부 들어 보여지고 있는 양대 노조의 힘은 정부를 흔들 정도다. 공공기관을 점거하더니, 회사 간부를 무차별 폭행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전까지 근근이 버텨왔던 힘의 균형이 노조로 기운 형국이다. 기업과 기업가를 적대시하는 1990년대식 노동관은 기업가들을 질리게 한다. 여기에다 세금을 거둬 나눠주는 식의 공정경제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마저 갉아먹고 있다. 선진국은 이미 내다 버린 낡은 적대적 노동관,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반시장적 정책은 한국경제를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강성노조의 활개와 반시장정책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투자와 소비가 줄면서 기업가 자영업자의 탄식은 깊어만 가고 있다. 정부와 노조만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할 뿐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대처와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 노조를 굴복시키던지, 아니면 노조에 끌려다니던지, 아니면 뉴질랜드처럼 합의를 하던지 셋중 하나다. 두 번째는 나라가 망하는 경우라 국민들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노조가 그럴 수 있다고 고집하지 않는다면 노조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변화다. 기업, 비정규직과 상생할 수 있는 사고의 재구성이 없다면 노조의 미래는 없다. 거대 기득권 집단이 오래가는 경우는 역사에서 보지 못했다. 앞으로는 그 수명도 짧아질 것이다. 여권도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계륵 같은 노조의 힘을 업고 정권연장을 꾀하든지 아니면 나라를 살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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