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0:33 (목)
진퇴를 아는 정치인은 아름답다
진퇴를 아는 정치인은 아름답다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8.11.22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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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편집국장

   권력은 유한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모든 권력은 달이 차면 쪼그라들 듯 최정점에 서면 서서히 기울게 돼 있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퍼져 꿈틀거리는 동력이다. 권력을 좇아 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도 권력을 잡게 되면 그 과정은 아름답게 꾸며지기도 한다. 대선을 꿈꾸다 낙마한 거물 정치인이 다시 현실 정치로 돌아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좌파 광풍 시대를 끝내겠다”며 칼끝을 다시 벼렸다.

 권력의 중심에 서려는 사람에게 대의명분이 없을 수 없다.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이 다시 정치 마당으로 돌아오면서 그럴싸한 말을 준비하지 않겠는가. 보수진영에서 보기에는 현 정권이 뿜어내는 바람이 미친바람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국민을 마구 휘몰아치는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거물 정치인의 컴백을 순수한 눈으로 볼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한 정치인의 욕망의 전차가 다시 궤도에 올라서 질주를 준비하는 모양새를 보는 시선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정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을 부드럽게 만드는 기술이다. 정치인에게 정치는 국민의 삶에 소망을 지피는 불쏘시개일까. 아니면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한 도구일까. 꼭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일까? 묘한 구석이 참 많다.

 홍 전 대표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다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은 22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 기자간담회에서 홍 전 대표에 대해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당이 폭망하는데 60% 정도 책임이 있는데 회개를 덜 하고 돌아왔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의 말은 현실 정치에 기웃거리지 말고 교회에 가서 마음을 더 닦아라는 말이다. 직접 날을 세우는 정치인도 있지만 홍 전 대표의 존재감에 주눅이 든 정치인도 많다. 홍 전 대표의 향후 정치 목표에 따라 당이 요동칠 뿐 아니라 보수진영이 더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정치인을 두고 호불호가 갈라지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정치인 행동이 국민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 같아 아쉬울 뿐이다. 정치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물과 공기 같아 별 탈이 없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정치가 꼬이면 국민은 숨이 턱턱 막힌다. 정치 때문에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를 준 정치인은 큰 죄를 범하는 꼴이다. 정치인이 진퇴를 적절하게 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큰 부담을 안긴다. 우리는 정치인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다. 정치인이 위기에 몰리면 죽을힘을 다해 변명을 늘어놓다 추한 몰골을 하고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게 우리 정치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보수진영이 여전히 전열을 가다듬지 못하는 이유가 ‘나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고 네가 나가야 당이 산다’는 자기본위적인 생각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해도 끊임없이 삐걱대는 이유가 자신을 제외한 인물 청산을 부르짖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을 원죄형과 자아도취형, 과대망상형 인간으로 나눴다. 이 이상한 인간 유형 가운데 우리나라 정치인은 과대망상형이 많다. 과대망상형은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을 어리석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신을 무결점 인간이라 여긴다. 이런 유형은 자신의 행동을 모두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과대망상형 정치인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옳다.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과대망상형 정치인은 중앙무대에서 넘쳐나지만 지방 정치무대에서도 활개를 친다. 지역에서 힘을 얻으면 자신이 아니면 지역 발전이 없는 것처럼 위세를 한다. 자격 미달인 지역 정치인은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다. 지난주 김상득 밀양시의회 의장이 후배 시의원을 폭행해 논란을 일으켰다. 폭행의 이유가 충성 맹세를 한 후배 의원이 제대로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웃지 못할 내용이다. 술자리에서 말다툼을 할 수는 있지만 한 지역에서 선배 따지고 후배 따지며 나한테 잘하라는 식으로 충돌하는 지방의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의원들이 지역을 대표해 시민과 군민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씁쓰레한 입맛이 저절로 다져진다.

 이 지방의회 의장은 한두 마디 변명을 대고 역시 그 자리에 앉아 의장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지만 순간 실수로 치부하고 예전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지방의회 의장의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데 이런 실수쯤으로 물러나겠는가. 자신이 아니면 이 자리에 앉을 사람이 없다는 과대망상에 걸린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시민이나 군민이 나중에 자신을 제대로 평가할 거라는 자기 주문을 꽉 붙잡기 때문에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다.

 중앙 권력이든 지방 권력이든, 정치인이 힘을 잡으면 끝까지 붙들겠다는 과대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원한 권력이 없다는 역사의 가르침에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거물 정치인의 컴백과 지역 정치인의 무뢰한 행동을 보면서 어떤 특정인을 꼭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진퇴를 아는 정치인이 아름답다는 역사의 울림이 떨어지는 은행잎보다 더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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