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의 현실
대리기사의 현실
  • 오태영 사회부장
  • 승인 2018.11.22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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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장

 어둠이 도시를 내려오면 일터로 나간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생각하며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일터를 찾아 헤맨다. 손에 쥔 핸드폰만 쳐다보며 누가 나에게 일거리를 주기를 기다린다. 정해진 일터가 없다 보니 그냥 거리를 걷는다. 힘들면 아무 곳에서나 쉬면 된다. 휴대폰에서는 쉬지 않고 콜이 울리나 내 일과는 거리가 멀다. 목을 빼고 한참을 기다려도 일거리가 없으면 유흥가로 간다. 취객이 많기 때문이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콜이 왔다. 행여 취소될까 봐 뛰기도 한다. 여름이면 온몸을 흠뻑 적시는 땀과 겨울이면 매섭게 부는 칼바람을 벗 삼아 뛴다. 이 사람의 이름은 대리기사. 낯선 취객의 차를 맡아 목적지까지 모신다. 때로는 모욕적인 언사도 듣는다. 운전을 왜 그따위로 하느냐, 빨리 가지 않고 뭐 하냐 하는 반말 섞인 핀잔을 듣기도 한다. 얼굴이 붉어지고 혈압이 치솟는다. 견디다 못해 한마디 하면 취객은 바로 기사의 목줄을 쥔 콜센터로 전화를 걸어 뭐 이따위 기사가 있나 하며 헐뜯는다. 콜센터는 어김없이 경고와 한동안 콜을 받지 못하게 하는 페널티를 날린다. 대리기사의 또 다른 이름은 만인의 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대리기사는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일거리다. 대리운전회사에 들어가 콜을 받을 수 있는 앱을 깔고 보험을 들면 바로 일할 수 있다. 어둠이 시작될 무렵부터 새벽 2~3시까지 일하면 10만 원 남짓 손에 쥔다. 한 달에 한번 내는 보험료는 별도로 하더라도 대리운전 기사들을 이동시켜주는 합차 이용료, 콜 수수료 등을 제하면 70%가 안 되는 돈을 쥐게 된다. 일하는데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취객의 횡포와 막말, 콜센터의 갑질이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지만 일부 취객은 폭행까지 한다. 콜센터는 거의 모든 경우 대리기사의 이유 있는 설명을 듣기보다는 회사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고마운 존재라거나 함께 가야 할 동반자라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대리기사가 2~3분 늦게 가도, 고객의 불만을 접수해도, 콜을 받았다가 취소해도 거의 어김없이 페널티를 가한다.


 갑질에 항의라도 하면 콜을 차단시키고 심지어 다른 업체에서도 일을 못 하게 한다. 업체들끼리 대리운전 기사가 업체를 옮기지 못하도록 카르텔을 쳐놨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업은 전화번호와 콜센터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럴듯한 전화번호만 있으면 모조리 사들인다 한다. 신생업체가 생겨날 소지를 원천차단하기 위해서다. 한 업체가 10개 이상의 번호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리운전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일부 대형업체는 하루에만 1천만 원대 수입을 올린다는 말이 있다. 이상한 것은 일자리가 없는 내 이웃을 을로 삼아 업체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때 아무도 대리운전 기사의 현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대리운전 기사들은 40% 정도가 주말에도 일한다. 주말이라고 쉴 정도로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거의 모든 기사가 손님에게 폭언 등을 당했다고 한다. 산재는 물론 국민연금, 의료보험 혜택도 없다. 자기가 별도로 보험을 들지 않는 한 교통사고를 당해도 보상금도 못 받는다. 업체가 치료비를 주는 것도 물론 아니다. 대리운전 기사는 벌거벗은 채 정글의 한가운데서 일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최소한의 노동자의 권리도,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최근 또 한 명의 대리운전 기사가 진해에서 일하던 중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았다. 고객을 만나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기사는 창원에 살면서 10년 넘게 대리운전을 했다고 한다. 심야에는 대리기사가 창원의 공영자전거 누비자를 가장 많이 이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번 손님을 태우면 1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을 버는 현실에서 고객이 많은 장소로 이동하거나 고객을 태우러 갈 때 돈을 아끼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전거 이용이 어려우면 뛴다. 신호등을 마냥 기다리기도 마음이 급해 쉽지 않다. 10년 넘게 일해도 교통사고를 피하지 못한 그를 향해 `조심하지 그랬어`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창원시를 비롯한 일부 도시에서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만드는 등 대리운전 기사의 열악한 현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마저 그들은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적폐는 왜 그냥 두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힘든 현실에서 꿋꿋이 10년 넘게 대리기사를 하며 가족을 부양했을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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