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9:27 (화)
졸속 예산심의와 돼지 책
졸속 예산심의와 돼지 책
  • 이광수
  • 승인 2018.11.22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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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기해년 새해 편성예산에 대한 심의가 시작됐다.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의원들은 출신 지역구의 숙원사업이나 민원 해결을 위해 예산부서와 줄다리기를 한다. 국회상임위를 통과한 예산안이 계수조정소위에 넘어가면 한 푼이라도 더 지역구 예산을 따내려고 이른바 쪽지 예산소동이 해마다 반복된다. 정부재정은 항상 수요대비 공급이 부족한 상태이다. 특히 지자체의 경우 자주재원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국고보조금이나 지방교부세의 지원 없이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재정자립도가 10%대에 머무는 일선 군지역의 경우 자체수입으로 인건비 충당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데도 새로 출범한 정부에서는 공공일자리 16만 개 창출계획에 따라 공무원채용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시 지역의 1개 동에 불과한 인구 5만 미만의 군에 700여 명의 정규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 현 2개 실국을 3개국으로 확대 개편하고 공무원 정원도 수십 명씩 늘리는 조직개편안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한국의 지방소멸 2018보고서`에 의하면 경남도의 경우 읍면동 308곳 중 192곳(62.3%)이 소멸위험 지역에 속하며, 이 중 125곳(40.6%)은 소멸 고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소멸위험 지역은 한 지역의 20~39세 가임여성 인구수가 65세 이상 고령인구수의 절반(소멸위험지수 0.5ㆍ4등급)이고, 소멸 고위험지역은 소멸지수 0.2(5등급) 지역을 말한다. 이처럼 출생률 저하로 인구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해당 지자체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이에 따라 정원동결이나 조직구조조정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공무원 수 늘리기에 급급한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기업체라면 벌써 부도가 났을 것이다.

 열악한 지방재정 상황은 80:20이라는 중앙과 지방의 불합리한 세입재정 비율구조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경우 40:60으로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보장되고 있는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권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시스템의 불합리가 근본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지방재정은 자체수입(지방세, 세외수입 등)과 중앙의 지방교부세(19.24%)와 각종 국고보조금(매칭펀드), 재정투융자 재원 등으로 지원받아 살림을 꾸리고 있다. 다행히 지방자치법 개정작업이 시작돼 지방교부세율을 10% 상향 조정한다고는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다.

 지자체의 경우 의존 재원과 자체재원을 합해도 경상적 비용을 충당하고 나면 신규 사업 등 지자체가 운용할 수 있는 가용재원은 5%도 채 안 된다. 더욱이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시대를 맞아 사회복지비의 대폭 증가(총세출예산액의 35%)는 국가 및 지방재정을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정부재정 운용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줄줄 새는 각종 복지예산에 대한 심사가 제로베이스 관점에서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민선 자치 시대를 맞아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은 선심성ㆍ전시성 사업을 선거공약으로 남발해 지방재정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철저한 사업 타당성 검토도 없이 우선 벌이고 보자는 식의 예산 낭비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예산 낭비에 대한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경제단체나 연구기관 등에서 제시하는 자료들을 보면 아마 연간 수천억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 검토가 필수적인데도 정치 논리를 앞세워 예타 제외를 지자체장들이 중앙정부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정치 앞에 재정 관련 법과 예산편성지침은 무용지물(?)에 불과한 셈이다.

 지난 정부 시절 모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는 자기 지역구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고 공약하는 바람에 여당 불모지에서 당선됐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이나 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이 선출했지만 그 지역구민만을 위해 일하는 대표자가 아니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선심성ㆍ낭비성ㆍ중복성 예산편성을 폭로하는 돼지 책(pig book)을 시민단체가 발간한다. 그리고 예산심의 때 핑크색 옷으로 단장한 돼지를 워싱턴 DC 의사당 주변에 몰고 나와 의회를 비난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돼지 책은 원래 포크배럴(pork barrel: 돼지 여물통)에서 유래한 말로 선심성ㆍ낭비성 예산 편성으로 국고를 낭비하는 의회를 비웃는 말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님을 앞서 언급했다. 오는 2020년으로 다가온 총선을 대비해 지역구 예산 챙기기 전쟁이 벌써 시작됐다. 그러나 나라 살림을 좌우할 예산심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정쟁에 몰두하고 있으니 주마간산 격의 졸속예산심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국민들도 선심성ㆍ낭비성ㆍ중복성 예산편성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 예산은 우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편성되므로 우리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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