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36 (금)
냉면과 귤
냉면과 귤
  • 이대형 서울취재본부 정치부장
  • 승인 2018.11.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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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형 서울취재본부 정치부장

 ‘냉면’과 ‘귤’이 최근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냉면과 귤은 문구 자체에서 보듯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이 조합이 남한과 북한을 상징하는 ‘도구(?)’가 됐으며 정치권의 정쟁의 거리로 작용했다.

 우선 냉면 탄생은 이랬다.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9월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 SK 최태원 회장 등 재벌 총수들과 한자리에 앉은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했다는 말이다.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기면 안 됩니다’

 이 또한 리선권 위원장이 10ㆍ4선언 11주년 기념행사 이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만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에게 했다는 말이다.

 이 발언은 지난달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리선권은 난데없이 대기업 총수들 모여앉아 냉면 먹는 자리에 불쑥 와서 ‘아니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얘기했어요”라고 밝히며 세상에 알려졌다. 즉각 정치권은 시끄러웠다.

 야당은 ‘냉면 목구멍 넘기기’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여당에서는 “알아보니 그렇게 말한 게 아니더라. 리선권 위원장도 처음부터 그 자리에 동석했더라”고 해명했으나 불을 끄기에는 미흡했다.

 지난 11일, 정부는 평양정상회담 당시 북측의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주 감귤 200t을 북한에 보냈다. 2010년 이후 정부 주도로 이뤄진 첫 대규모 대북물자 반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0년 7월 북한 신의주 등에서 발생한 수해 지원을 위해 그해 11월까지 쌀 5천t과 컵라면 30만 개, 시멘트 3천t 등을 전달한 것이 마지막 정부 주도의 대북 물자반출이다. 당초 시멘트를 1만t까지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연평도 포격사태가 발생하면서 중단됐다.

 이번 귤 지원은 5ㆍ24조치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및 미국의 독자 제재 망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귤은 10㎏ 상자 2만 개에 담아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하루에 두 번씩 모두 네 차례로 나눠 운반됐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논의가 속도를 내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주산 귤 200t을 북측에 보내자 즉각 “평화의 섬인 제주도에서 영근 귤이 평화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하리라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남과 북이 가장 귀하고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받음으로써 전쟁 없는 평화의 한반도 시대를 증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야권에선 정부를 향해 ‘대북 퍼주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평화를 싫어하는 국민들이 어디 있겠는가, 평화로 가는 방법상의 문제가 틀렸다. 군 수송기로 북에 보냈다는 귤 상자 속에 귤만 들어 있다고 믿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19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12차 ASEM(Asia Europe Meeting) 정상회의에 참석, 두 차례의 발언과 프랑스, 영국, 독일 등과의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 설명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과 제재 완화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의사는 워낙 강하다. 야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주 귤이 평화의 사절로 십분 활용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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