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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표書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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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 종
  • 승인 2018.11.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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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종

행간역에 도착하면

깃발 흔드는 역무원이 있다

바람의 음계를 타듯

침목枕木이 대열을 이루고 기차의 페이지를 넘긴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은 기차역이 그립다는 것을 안다

책갈피 플랫폼에서 빠져나오면

역무원은 그때마다 기차표에 밑줄을 그어 주기도 하고

눈인사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 페이지에서 저 페이지로 넘어가는 길목마다

목숨을 던지는 낱글자들이

마치 그리움으로 모였다 흩어질 때마다

역무원의 깃발에서

꽃들이 피었다 진다

머물던 기차가 지나가고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글자를 줍고 있었다

가고 오지 못하는 어떤 길도

허공의 바깥에서 멈추는 법은 없다

떠나간 것에 마음 두지 말자고, 그렇게 살지 말자고 하면서도

행간역에 오면 그리움으로 서로를 묶고자 하는 것은

역무원의 깃발 때문이리라

기다려 주는 꼬리표 같은 마음의 문 열고

다시 출발하는 여행에 함께해 주는

음표 같은 행간역에서

시인 약력

ㆍ함안 출생

ㆍ창원대 독어독문학과

ㆍ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독서지도ㆍ심리상담사로 활동

ㆍ시집 ‘식탁에 앉은 밭이랑’(2016년) 발간

ㆍ시집 ‘물방울 위를 걷다’(2017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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