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14 (금)
줄줄 새는 복지예산
줄줄 새는 복지예산
  • 이광수 소설가
  • 승인 2018.11.01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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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사장병원을 세워 혈세 1천352억 원을 꿀꺽한 요양병원 관계자 52명이 적발됐다. 연이어 매년 나랏돈 5조 원을 퍼붓는 요양원 운영 비리 기사가 신문 사회면 머리기사로 도배질 되고 있다. 얼마 전 용기 있는 모 여당 국회의원의 부정비리 유치원 폭로로 나라가 불 집 쑤신 듯 난린데 점입가경 갈수록 태산이다. 다들 터질 게 터졌다고 비리 투성이 복지예산의 방만 운영에 이구동성 질타를 퍼붓고 있다. 그럼 여태까지 이런 비리가 왜 관계 당국에 의해 적발ㆍ시정되지 않고 곪아 터질 만큼 썩어 있었을까. 한마디로 표를 의식해 이들 집단의 로비에 놀아난 정치인들과 관계 공무원의 무능과 직무유기다. 고령사회를 맞아 복지재정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나랏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니 통탄할 노릇이다. 바지 시장에 사무장 병원이 지난해 225곳이나 적발돼 부당집행 요양급여 6천949억 원을 환수했다고 한다. 자식들이 부모 부양을 기피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대세인 세상에 요양비의 60~80%를 정부나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부담하는 복지예산은 근로자들이 뼈 빠지게 일해 받은 월급에서 자동공제 납부한 갑종근로소득세와 부도날까 전전긍긍하며 적자난 기업주가 납부한 목숨과 같은 돈이다. 어떤 사람은 국민의 4대 의무의 하나인 납세 의무이행을 위해 피 같은 세금을 내는데, 그 돈이 사이비 의료인과 후안무치한 사설유치원장, 노인요양원장의 호주머니 돈이 됐다니 도적 떼가 따로 없는 것 같다. 물론 양심적인 사회사업가의 입장에서는 덤터기를 썼기에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일어탁수라고 어느 조직이나 사회도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로 인해 선의가 매몰되고 불신이 팽배해지는 것이다.

 한 해 정부 예산의 34%에 해당하는 146조 원의 복지비가 다른 복지 분야에도 정상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불신이 불신을 낳는 악순환은 그 불신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비리 불감증으로 고착화 된다. 이런 비리들은 항상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 원리에 따라 불균형 상태가 유지될 때 발생한다. 맞벌이 부부들이 애를 로또 당첨과 같은 공립 유치원에 보낼 기회를 얻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사립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악용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수십조 원의 복지재정을 매년 투입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인 공립유치원의 증설은 안중에도 없었다. 손쉬운 민간위탁행정으로 편안하게 서류만 만지고 형식적인 감사만 하면 되는 탁상행정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닫은 행정은 눈먼 장님행정의 전형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1.05)로 전전긍긍하면서 육아비용 몇 푼 지급하고 산후 휴가 며칠 더 준다고 애 더 낳을 사람은 없다. 맞벌이를 해도 뛰는 밥상 물가에 애들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든데 육아 때문에 외벌이로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겠는가. 정부 권장대로 한 명 더 낳아도 적은 비용으로 안심하고 애 맡길 곳이 없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다가 터진 것이 사설유치원 비리 아닌가. 이런 현상은 건강보험 분야에도 수두룩하다. 소위 나이롱환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 복지재정을 야금야금 축내고 있다. 필자가 모 기관에 재직하던 때 얘기다. 그 시의 모 병원 5층에는 밤에만 입실하는 환자로 가득하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공단의 산재 환자를 수용하는 전문병원인데 낮에는 5층 병실이 텅텅 비고 저녁때가 되면 입실해서 병실을 채우는 나이롱환자 집합소로 불렸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일신 된 모습으로 탈바꿈했지만, 아직도 전국 곳곳의 병원에는 교통사고를 빙자해 나이롱환자 노릇을 하며 국고를 축내고 있는 환자가 수두룩하다고 건강보험공단 자체 조사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료 부정수급자가 한 해 수천 명에 이르러 건강보험재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사이비 의사와 나이롱환자, 얼빠진 보험 설계사의 합작에 의해 공공연히 저질러지는 부정비리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런 부정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도 문제지만 나랏돈을 관리하는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직무 태만이 더 큰 문제다. 정부의 공공일자리 창출계획으로 공무원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모든 행정업무가 전산화되고 회계 처리 마저 정부 회계전산화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지만, 모 시의 경우 동일수준 인구 기준 평균 공무원 수보다 600명이나 많은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도 올해 130여 명의 신규인력을 더 뽑았다고 하니 그 많은 인력이 도대체 뭐하고 시간을 때우는지 모르겠다. 시가지를 둘러보면 하나도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없고 민원처리를 해보면 10여 년 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 눈에 바로 보인다. 경찰과 소방, 세무서를 가보면 천지개벽한 느낌이 드는데 행정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으니 유구무언이다. 엊그제 행자부 장관이 발표한 지방자치법 개정이 공무원 수 증가와 직급 상향조정으로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지방의회 역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명예직이 아닌 월급 받는 공무원처럼 돼 가는 느낌이 든다. 시ㆍ군 행정을 견제하고 예산집행을 엄격히 심사 통제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것은 시 군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예산편성 내용을 한 번 살펴보면 훤히 알 수 있다. 국회와 지자체 의회의 내년도 예산심의가 곧 시작될 것이다. 올해는 줄줄 새는 복지예산을 어떻게 심사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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