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민심
명절 민심
  • 오태영 사회부장
  • 승인 2018.09.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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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장

 20년 전만 하더라도 명절 가족들과의 대화 주제는 주로 아이들 장래 문제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망, 어떤 업종이 뜨고 지는지 하는 먹고 사는 문제였다. 누구는 무엇을 해 돈을 크게 벌었다더라, 누구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 크게 출세했다더라 하면서 가족들 미래를 걱정하고 다 함께 잘살아 보자는 다짐이나 반성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정치 이야기가 빠진 적은 없었다. 내년 총선이나 대선은 어떻게 되겠나 하는 정치 이야기도 단골 메뉴였다. 그동안 있었던 가족들의 대소사를 이야기하면서 건강정보를 교환하고 우리가 함께하는 공동체를 살펴보고 전망을 해보는 것은 명절 때만 누리는 즐거운 경험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치던 그런 시대였다.

 그러던 명절이 어느 때부터인가 논쟁을 넘어 정쟁의 장이 돼 버렸다. 정치 때문이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는 달라도 날 선 언어가 동원되지는 않던 명절 대화를 정치가 점령하면서 거친 말이 오고 간다. 70을 훌쩍 넘은 부모를 향해 생각이 고루하고 문제 인식이 없다며 타박하는 장성한 자녀들, 이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하늘만 쳐다보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어떤 자녀는 누구를 지지하는지 묻고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찍지 않으면 앞으로 연을 끊겠다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정치색에 따라 형제간에도 선이 그어졌다. 혹여 정치문제가 나오지나 않을까 서로 조심한다. 많은 가족들에게서 명절 때 정치문제 거론은 금기 대상이 됐다.

 이번 추석을 지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명절 가족 대화가 어땠는지 물어봤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제위기에 대한 걱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 언론의 침묵에 대한 질타 그것이었다. 우리가 현재의 경제 수준을 이어가는 것은 앞으로 매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진국 수준의 고임금, 낮은 생산성,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각종 규제와 정부 정책, 양보할 줄 모르는 귀족노조,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이 맞춰진 경제정책 등에 대한 우려와 질타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고 한다. 정부가 성장잠재력과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있지 않고 세금을 통한 정부 주도 성장에 목을 맨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경제위기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은데 이를 지적하는 언론은 없다는 언론에 대한 불신도 팽배했다. 공중파 뉴스는 보지 않은 지 오래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방송을 장악한 정부가 방송의 비판기능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제 기능을 못 하는 언론 환경에서 대한민국호가 바른 항해를 하겠느냐는 우려가 팽배했다고 한다. 국정농단에 이어 사법농단까지 구악 척결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사람 사는 세상에 어느 정도의 부조리는 있을 수밖에 없는데 단칼로 자르듯 보수세력에 부역한 적폐를 축출하는데 만 열중이라는 것이다. 언론이라는 입을 틀어막고 숙청을 연상케 하는 적폐 축출을 하면서 세금 퍼주기에 열중하는 현 정부의 최종 지향점은 어딘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다소 놀라운 것은 예전의 가족 대화에서 많이 보였던 치열한 논쟁이 크게 수그러졌다는 점이다. 정부를 비판해도 친여 성향의 가족들이 크게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오히려 동의하고 문제의식을 함께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색을 떠나 정부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반증이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북핵,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 간의 화해 분위기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인들은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남북화해가 무엇이냐고 했다. 그럼에도 여당 인사들이 방송에서 전하는 명절 민심은 필자가 듣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일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안다는 전제를 제외하고는 정부 찬양 일색이다. 뉴욕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한국에서 언론과 탈북민을 탄압한다는 말이 들린다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지금 언론처럼 자유로운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많은 국민들, 언론종사자들의 생각과 대통령의 인식이 이렇게 다르다니 놀랍다. 역사는 집권세력의 인식보다 일반 국민들의 인식이 더 정확하다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줬음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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