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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1인극
김정은 1인극
  • 경남매일
  • 승인 2018.09.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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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장

 지금 한반도의 주역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동북아의 향후 질서 판짜기와 한반도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연은 미국의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 중국과 러시아는 조연인 이 무대에서 김정은은 제작자이자 연출자를 겸한 1인극을 쓰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도 김정은이 기획하고 연출했다. 동창리 미사일발사장 폐쇄라는 미끼상품을 던져놓고 휴전선 부근 군사행동 금지, 비행 금지구역 확대,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관광, 철도 및 도로 연결과 같은 북한의 핵심 이익과 직결되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번 회담의 핵심관심사인 난관에 빠진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가능성만 던진 채 시큰둥한 반응을 내놓았는데도 세계가 핵 해결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다가 그동안 조연에 머물렀던 한국을 핵 중재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노련함도 보였다. 그 대가로 체제 불안 요인이었던 군사적 긴장 완화조치, 경협이라는 큰 보따리도 챙겼다. 통일을 내다보면 어차피 치러야 할 대가라 하더라도 핵 문제에 대한 진전된 결과물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에 치른 대가는 상당하다. 당장 군사안보 면에서 상당한 취약성을 노출할 수 있는 합의를 했고, 도로와 철도 연결도 상당한 재정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핵 문제와 관련해 좁았던 우리의 입지가 이번 합의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전개된 핵 사태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의 입지라는 것은 어떤 합의가 이뤄지든 우리는 거의 전적으로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번 결과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핵 사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촉발시켰다. 김일성 이래 오랜 핵 병진 전략의 결과다. 이런 정책은 북한의 정권 안보, 체제안정 차원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핵미사일을 무기로 위기에 빠진 북한 경제를 살리는 돌파구로 삼고자 하는 것이 현재의 북한 속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한의 경제난과 체제 불안은 미국도 한국도 아닌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백두산 혈통 정권세습을 유지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핵 개발을 선택한 결과가 작금의 핵 사태의 본질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과 친북인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있을 수 있는 미국의 도발에 대한 자위 차원에서 핵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보는 것은 뻔한 변명이자 어불성설이다. 북한은 핵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친북인사들이 갖고 있는 배경에는 이런 북한의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과 북한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화려한 언어의 잔치는 있었지만 이런 신뢰를 줬는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태영호 씨가 쓴 3층 서기실의 암호에는 북한의 경제난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북한 우표와 화폐를 소장용으로 외국에 팔고 외교관들이 공관 유지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못 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오랜 굶주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된 김 부자 정권에 대한 회의, 철벽의 장막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 곳곳에 침투한 한국과 중국의 눈부신 성장 실상과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는 더 이상 북한이 철권통치만으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3번의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낙후라는 표현으로 북한의 경제 실상을 토로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번 회담에서 확인된 것은 북한이 핵 협상의 보따리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믿음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보따리의 크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저 보따리 크기를 염두에 둔 대외용 선전일지 모른다. 사실 외교에서 믿음은 공허하다. 대가가 중요할 뿐이다. 국익이 현금이라면 믿음은 부도 가능성이 뻔한 어음일 따름이다. 보따리가 바로 믿음이다. 구한말 조선을 두고 미국과 일본이 거래했던 것처럼 국익 앞에서는 명분도 없다. 핵 협상에서 아무런 주도권이 없는 우리는 믿음도 보따리도 마음대로 내놓지 못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북핵과 관련된 국민적 합의는커녕, 정치권 내부에서 조차 의견접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김정은의 1인극 시나리오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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