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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보이지 않는 질서 찾는 지혜
혼돈의 시대 보이지 않는 질서 찾는 지혜
  • 이광수
  • 승인 2018.09.11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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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최근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전작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에 이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 Century)’을 출간했다. 그는 한국어판과 영어판이 동시에 출간된 서문에서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혁명으로 인류가 직면한 최대과제로 자유주의가 신뢰를 잃고 있다고 했다. 두 쌍둥이 기술이 합친 힘은 조만간 수십억의 사람들을 일터에서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까지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모든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디지털 독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럴 경우 대다수 사람들은 착취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쁜 지경, 즉 사회와의 관련성을 잃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은 전작 ‘호모데우스’에서 AI의 위험성을 언급한 경고음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스페이스 엑스의 CEO 일론 머스크가 기술혁명의 산물인 AI의 위험성을 경고한 말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이처럼 유발 하라리는 그의 3부작 저서에서 우리 인류가 신의 경지에 이를 만큼 과학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최상의 대안으로 선택한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가운데 국가 통치는 우드로 윌슨이 주장한 야경국가(Night police State)수준에 머물며 최소한의 시장규제에 만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1929년 미국을 휩쓴 대공황(Great Panic)은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주장한 케인즈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는 유효수요(Effective Demand)의 창출을 통해 실업자를 구제해야 하며, 자유방임에 따른 시장독점 카르텔을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 경제는 정부개입이 일상화되는 규제의 양산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과도한 시장규제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모델로 재편됐다. 이는 아담 스미스와 케인즈의 경제이론을 융합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로 기든스의 ‘제3의 길’ 출간으로 이론적 근거를 확립함으로써 재정립됐다. 신자유주의는 좌와 우를 넘어서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국가와 경제 및 시민사회관계를 탄력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물결은 글로벌리제이션의 도도한 흐름에 부합한 범지구적 민족주의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물결은 유럽경제의 침체와 차이나 파워의 급부상에 따른 동아시아경제권의 부활로 ‘제3의 길’은 그 방향타를 잃고 말았다. 또한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에 따른 러시아경제의 침체기를 틈타 양극패권체제에서 일극패권체제를 굳히려는 미국의 야심은 세계기축통화를 달러 중심시대로 만들었다. 그러나 14억 거대인구를 포용한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중국 위안화의 거센 물결은 달러화를 위협하며 세계를 미ㆍ중 양극패권시대로 재편시키고 있다. 강력한 라이벌을 만난 미국은 트럼프행정부의 자국 산업보호정책인 ‘아메리카 퍼스트’ 경제정책기조로 중국의 팽창에 맞서고 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팜 빌리지(farm village)의 몰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사양화된 자국 기간산업부활을 위해 중국 등 세계 각국을 향해 관세폭탄을 퍼부으며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다.’고 한국을 비롯한 제3 세계국가들은 미국의 무역보복정책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처럼 혼돈 속으로 빠져든 세계경제질서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반 난민수용주의 정치세력인 극우정당의 출현으로 유럽연합의 앞날 또한 시계제로 상황에 처해 있어 더욱 험난한 실정이다.

 지금 우리 정부에서는 모처럼 찾아온 남북화해와 협력의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제3차 남북 정상간 회담을 앞두고 미ㆍ북간의 지루한 줄다리기 핵협상결과의 불확실성과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내부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할 이중고에 빠져 있다.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고 무엇이 부조리한 것인지 모호한 이념논쟁과, 내로남불의 진영논리에 갇혀 혼돈을 거듭하는 우리 정치경제사회의 현재와 미래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처해있다. 모로 가도 목적만 이루면 그만이라는 목표지상주의가 판치던 시대는 이제 조종을 고했다. 그 시절의 정의가 오늘은 불의로 뒤집혀지는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잣대가 애매모호한 시대가 됐다. 이처럼 난마처럼 얽힌 우리의 앞날을 헤쳐나갈 방향타를 잡은 키맨(Key Man)의 선택지는 난중난사이다. 유발 하라리가 자유민주의의 수호를 위해 주장한 제안들이 보다 더 나은 오늘과 미래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음미해 보면서 혼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질서(Invisible Order)’를 찾아내는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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