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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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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매일
  • 승인 2018.08.3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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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영 사회부장
▲ 오태영 사회부장

베트남이 축구로 열광이다.

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팀이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한 데 이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자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4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달성하자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열광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적 자신감까지 더해져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영웅 박항서 감독 덕에 한국인들이 택시비 인하 서비스와 식당 음식 서비스도 받는다. 한국행 관광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이렇게 온 국민이 하나가 돼 열광을 해봤나 하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왠지 씁쓸하다.

아마도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국민을 희망과 기대에 들뜨게 했던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사건으로는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우리나라가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던 기억이 없다.

이런 국민적 열광은 삶의 고단함을 잊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나라발전의 동력이 되는 것도 물론이다. 우리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기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나쁜 기억이 오래간다고는 하지만 노 대통령의 투신 서거, 이명박ㆍ박근혜 두 대통령의 구속이 상징하듯 거의 언제나 나라가 시끄러웠고 싸웠던 기억만 남아 있다. 앞선 정권이 했던 일은 부정되고, 적폐로 몰려 줄줄이 감옥행이다.

국민이 즐거울 일이 없다. 간혹 골프나 테니스에서 승리 소식이 들려오지만 국민을 뜨겁게 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베트남 축구처럼 또 한 번 열광하기를 목매어 기다리는 이유는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오랜 불황으로 지친 몸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쓰는 힘을 얻고자 함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다.

기업의 투자 의지가 꺾인 지 오래고, 한때 국내로 돌아오던 기업들이 다시 탈출할 기미를 보인다. 거제가 사상 최고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경남의 경제는 끝을 모르고 추락한다. 올해 들어서는 많은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집값도 내려 가만히 앉아서 재산을 날리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커녕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만 커지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썼던 근대화의 업적은 폄하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까지 도전받는 시대다.

진보와 보수로 갈려 허구헌날 싸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며 가졌던 우리는 위대하다는 자부심은 힘을 잃어가고 패배주의 그늘이 엄습한다. 지난 25일 타계한 미국 존 메케인 상원의원이 죽음을 앞두고 작성한 마지막 메시지는 작금의 우리가 되새겨 볼 만하다. 그는 분열과 반목이 아니라 단결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적의와 증오, 폭력을 낳는 하찮은 대립을 애국과 혼동할 때, 또 장벽을 허물기보다는 장벽의 뒤에 숨고, 이상의 힘을 의심할 때 우리의 위대함을 약화시킨다”고 했다. ‘현재의 어려움에 절망하지 말고 항상 미국의 위대함과 유망함을 믿으라. 미국은 절대 멈추지 않고, 우리는 역사를 만든다’고 적었다. 꼭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당선된 이해찬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많은 말을 했지만 중요 줄거리만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철통같은 단결로 문재인 정부를 지키고, 적폐 청산, 사회개혁을 통한 촛불혁명의 발전,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당,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유능한 정당,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포용적 복지국가, 이를 위한 최고의 협치 추진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문재인 정부 성공,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과 20년 연속 집권이었다. 생의 마감을 앞두고 있는 사람과 이제 막 권력을 쥔 사람의 말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국민이여 다시 일어서자’고 한마디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정권 재창출에 목을 매는 정치를 국민들은 어떻게 볼까. 난세 한국을 구할 영웅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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