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5:57 (금)
‘약자 코스프레’로 치부하는 방송 행태
‘약자 코스프레’로 치부하는 방송 행태
  • 경남매일
  • 승인 2018.08.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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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 서울취재본부 정치부장
▲ 이대형 서울취재본부 정치부장

#1 약자 코스프레?
나는 꿈꾼다. 남의 처지를 잘 모른 채 함부로 재단해 판단하는 국민이 아주 적은 나라와 세상을….

며칠 전 아내가 물었다. “육십이 넘도록 소아마비 장애로 사는 것과 지금의 이 시련 중 어느 쪽이 더 괴로운가”라고….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장애 없이 건강한 두 다리로 맘껏 뛰고 걸어보는 것이 백배로 낫지”라고 대답했다.

장애를 안고 사는 건 비장애인이 겪지 못하는 많은 불편과 어려움에 금전적 손해도 따른다.
같은 소아마비 장애라도 비교적 가벼운 장애여서 보조 장구 없이 걸을 수 있는 경우와 스틱을 짚거나, 양쪽 목발에 의지하든지, 휠체어를 타야 하는 등 장애의 정도가 각자 다르다.

나도 젊었을 때는 보조 장구에 의지하지 않고 걸었는데 퇴직 후 다리 골절 부상도 당하고 나이도 60이 지나다 보니 다리가 더 부실해져 어쩔 수 없이 스틱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어제 뜻하지 않은 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되자, 나는 조사에 앞서 조사실까지 가는 과정 역시 험난할 것이라서 주차와 계단 상황을 미리 알아봐야 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에는 계단에 손을 잡을 ‘난간’이 전혀 없어 스틱만 의지해 가다가는 또다시 부상의 위험도 있기에 고민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검찰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고, 검찰 측에서는 현관 앞에서 차에서 내리면 바로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아주 친절하게 배려해줬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 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말할 수 없는 비애와 뚝뚝 떨어지는 자존감을 애써 참았다. 어느 방송에서는 계단에 난간이 설치되지 않아서 비롯된 이런 사정을 헤아리지도 않고 그저 동정심이나 유발시키려는 얄팍한 잔꾀를 쓴 ‘약자 코스프레’라고 조롱하는 기사를 다뤘다.

‘사람이 먼저’인 인권과 복지의 대한민국에서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의 고통과 인내를 이해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국민이 얼마 되는지 새삼 의심을 하게 된다.

#2 사죄하면서 ‘양반다리’한 의원은 누구?
6ㆍ13 지방선거 참패 뒤 첫 자유한국당 비상의원총회가 열린 지난 6월 15일, 총회 장소인 국회 예결위회의장 양쪽 전광판에는 하얀 배경에 정자체로 쓰인 ‘반성문’이 떠 있었다. 의원들은 넥타이를 하지 않은 노 타이 차림이나, 하얀 블라우스 차림으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책임을 물으면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란 현수막 앞에 대국민 사과를 위해 무릎을 꿇는 자리였다.

이 장면을 보도한 일부 방송은 “사죄하면서 ‘양반다리’한 의원은 누구?”라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행사 직전 앞쪽에 앉은 O 의원. 슬그머니 뒤쪽으로, 처음에는 무릎을 꿇었지만 무릎에 무리가 왔는지 이내 양반다리로”라고 친절하게 자막까지 내보냈다.

<장면 1>은 최근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양대노총 분열ㆍ와해 공작 의혹’을 받는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출두하면서 생긴 일이고, <장면 2>는 자유한국당 4선의 김재경 의원이 지방선거 참패 이후 대국민 사과 현장에서 생긴 얘기를 각각 전해 들었다.

이 두 분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미비로 인해 일상생활에서의 거동이 불편하다. 하지만 일부 언론의 무지나 일방통행식 보도로 생긴 일이어서 씁쓸하기 그지없다. ‘약자 코스프레’식 오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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