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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와 정치꾼
정치가와 정치꾼
  • 경남매일
  • 승인 2018.08.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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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소설가
▲ 매일시론 이광수

접미사는 어떤 낱말의 끝에 붙어 뜻을 첨가해 한 낱말을 이룬다. 정치가는 정치라는 낱말에 -가(家)라는 접미사가 붙어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된다. -가(家)는 그 방면에 나보다 뛰어난 이, 어떤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로 전문가를 뜻한다.

정치가, 행정가, 법률가, 화가, 문학가, 음악가, 수집가, 장서가 등등 전문가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꾼이라는 접미사는 어떤 일을 전문적,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 그 일에 모아는 사람(무리)으로 대개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인다. 난봉꾼, 노름꾼, 사기꾼, 협잡꾼, 쓰리꾼, 훼방꾼 등등 부정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할 때 많이 쓴다. 앞서 언급한 가와 꾼의 접미사가 붙는 어휘설명을 보면 정치가와 정치꾼의 이미지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당파성과 투쟁이 정치가의 본령이며,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을 세 가지 규범적 논의로 요약했다.

첫째, 미래를 내다보면서 현실개혁을 지향하는 열정. 둘째,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러나 거리감을 가지고 받아들이는 식견. 셋째, 정치가 폭력성을 갖는 수단과 분리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온 결과에 대한 책임의 자각 등이다. 위에서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가의 본령인 당파성과 투쟁이 어떻게 규범적이어야 하는가를 정치가의 자질에서 적시하고 있다. 규범이란 인간이 지켜야 할 이성적인 행동지침이다. 그 규범을 일탈하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정치가의 자질이 운위되는 것이며 정치가와 정치꾼이 구별되는 경계가 명확해진다.

그는 정치가는 이 사회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하는 열정과, 현실을 직시하되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정치가의 본령에 충실한 결과 파생되는 폭력성과 그 수단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강조했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가들(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을 막론하고)이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가로서 준수해야할 행동규범을 잘 지키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나의 편견인지 모르지만 막스 베버의 논지대로 판단한다면 우리 정치판에 정치꾼은 있어도 정치가는 부재라는 부정적 결론이 나온다. 이는 정부수립 후 정치가의 본령인 당파성과 투쟁의 수단이 정치 규범준수의 틀을 확고히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우리 정치판은 이조시대 사색당쟁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한 채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 너 죽고 나 살기 식 진흙탕 싸움은 국민들을 정치 불신의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판이 프로파간다로 판을 치다보니 유권자의 권리행사마저 왜곡시키고 있다. 내가 왜 이 사람을 지지하는가도 모른 채 SNS(사회관계망)의 편 가르기에 편승해 영혼 없는 주권행사를 한다.

내 이익에 부합되는 사탕발림 정치구호가 우선이고 공공의 이익과 국가의 미래와는 거리가 먼 선택을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제일이고, 그가 내뱉는 ‘옳소!’ 소리에 부화뇌동한다. 침묵하는 다수는 극단적인 소수의 큰 목소리에 압도당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능력에 따른 평등이 설자리를 잃고 갑질과 을질의 진흙탕 싸움 속에 사회주의적 평등만이 살길이라고 아우성이다. 여론이라는 미명하에 옳고 그름의 규범적 판단 없이 나오는 대로 내지르는 주장들이 민심인양 호도되는 세상이다. 사회관계망에 범람하는 너 죽고 나 살기 식 여론몰이가 국론의 결정기준이 돼 연일 매스컴을 통해 갑론을박이다.

행정 관료들은 정치풍향계에 좌고우면하면서 줏대 없는 정책남발로 국고 축내기에 골몰한다. 정치가가 설 자리를 잃고 헤매는 사이 정치꾼은 제철 만난 듯이 기고만장이다. 그러나 호도된 여론으로 한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지는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상누각의 모래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천심이고 민심이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혐오하고 불신하는 집단에 속한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에게 밝은 정치, 맑은 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권력에 대한 집착을 쉬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공통된 악습이다.

머리카락 하나 굵기의 메모리칩에 수억 개의 자료가 입력되는 광속시대이지만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체제는 세계 도처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건재하고 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진흙 속의 장미로 비유될 정도로 기사회생한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방향키를 쥔 사람은 정치가들이지만 그들을 바론 길로 인도할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올바른 주권행사가 바로 문제를 푸는 열쇠이니까.

언제 우리도 막스 베버가 말한 정치가다운 자질을 갖춘 정치인들에게 국정을 맡겨 대립과 갈등이 사라지고 화합과 화평의 시대가 올 것인가. 쉽게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더위 먹은 가슴이 더욱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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